북괴 진의 탐색 미 외교가 고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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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조자양 중공수상의 워싱턴 방문과 때맞추어 평양·서울·워싱턴에서 차례로 한반도 문제를 다룰 여러 형태의 모임을 갖자는 구상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반도의 긴장상태가 랭군사건 때문에 남북대화의 단절이래 최악의 상태에 빠져 있는 만큼 이 같은 논의들이 어쩌면 큰 변화를 예고하는지도 모른다고 단정하고 싶은 유혹은 크다.
미·중공간의 관계가 접근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한반도문제가 그 큰 흐름의 여파로 어떤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 여건은 충분히 조성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무성의 공식반응이나 워싱턴의 외교관들은 북한의 3자 회담 제의나 「레이건」대통령의 4자 회담 제의가 지금까지의 교착상태에 돌파구를 마련할 만한 새로움이나 현실성은 별로 없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무엇보다도 문제가 되는 것은 북한의 진의다.
그들이 한국을 따돌리고 미국과만 평화조약 문제를 협상하겠다던 종래의 주장을 수정해서 한국을 포함한 3자 회담에도 응하겠다는 제의에는 최악의 경우 두 가지의 함정이 들어있을 수 있다고 한 외교관은 지적했다.
첫째, 그 제의가 3자 회담의 형식을 빌되 실질적으로는 「남북한」과 「미-북한」의 대화라는 두 개의 2자 회담이 될 공산이 크다는 점이 지적됐다.
즉 휴전협정을 평화조약으로 바꾸는 일이나 북한이 주장해온 미군철수 등 긴장완화에 속하는 문제는 미국과만 논의하고 한국과는 이른바 「민족내부의 문제」만을 다루자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북한의 3자 회담제의란 사실상 그들이 주장해온 미·북한 단독회담과 비슷한 형태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 북한 측 제의대로 회담에 응했다가 성과 없이 협상이 무한정 지연될 경우 북한은 미국과의 공식대화 통로를 개설하게 되지만 한국은 이에 상응하는 대 중공 대화창구를 뚫지 못한 채 소외될 가능성이 지적됐다.
미국무성이 북한의 의도에 대해 회의를 갖고 있으며 회담의 형태를 세부적으로 논의하기는 시기상조라고 논평한 것은 랭군사건 직후라는 시기뿐 아니라 이상과 같은 배려 때문인 것으로도 보인다.
거꾸로 「레이건」대통령이 거론한 4자 회담도 북한측이 볼 때 받아들이기 어려운 구상으로 평가된다. 그 이유는 4자 회담이란 실질적으로 북한이 극력 반대해온 교차승인방식의 기본 구조이기 때문이다.
4자 회담 방식은 3자 회담 방식이 갖는 구조상의 결함을 보완할 수 있는 균형을 제공할 수 있다. 즉 「민족내부 문제」는 한국이 지난 3년간 여러 번 제의한 바대로 남북대표간에 논의하고 한반도 긴장완화문제는 미·중공이 주도할 수 있게된다.
그러나 북한이 교차승인을 반대해온 지금까지의 입장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그들이 이를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으로 봐야된다.
북한의 이번 제의가 약간의 변화를 포함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워싱턴포스트지는 이번 북한제의에는 미군철수를 평화협상의 선행조건으로 내걸던 종래의 주장이 수정되어 미군철수 이전에도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는 구절과 평화협상이 3자 회담에서 다루어질 수 있다는 구절이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한 변화가 한반도 문제에 대한 북한 입장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지, 또 방미중의 조자양 중공수상이 상반된 쌍방의 입장을 접근시킬 수 있는 어떤 숨은 제안을 제시했는지가 앞으로의 관심사다.
그러나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조 수상이 한반도 문제에 돌파구를 마련할 만한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갖고 왔다기보다는 지금까지 취해온 방관자적 입장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측 입장을 워싱턴에 전달하려는데 역점을 두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워싱턴=장두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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