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3912) - 제80화 한일회담(111) 4차회담 개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기시」일본수상의 친서로 한결 누그러진 한일양측은 4월15일 제4차한일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나는 4월13일 임병직수석대표등 대표단에게 다시한번 우리측 입장과 일본측 주장을 상세히 설명한 후 『일본측이 새로운 주장을 펼 경우 그에 대한 우리측 입장을 밝히기전에 반드시 본부에 보고해 이대통령의 훈령을 받을 것.』을 당부했다.
우리측 대표단중 과거 한일회담에 관여했던 인사는 법률가인 장경근의원, 주일대표부의 유태하공사 및 최규하참사관뿐이었고 임수석·김유택주일대사·이호씨는 첫 경험이었다.
회담의 제의 하나 하나가 모두 중대한 문제인데 비해 대표단수가 6명밖에 안돼 걱정이었는데 일본측은 회담 하루전 전격적으로 8명의 대표를 추가로 임명했다. 당시 국내신문들은우리 대표단구성과 관련해 법률전문가의 보강을 촉구했고 조장관과 나도 이대통령에게 대표추가를 건의했으나 이대통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대통령은 13일 대표단을 경무대로 불러 자신의 대일강경론을 일장훈시한 후 임수석을 향해 『「벤」, 자네가 저쪽의 「사와다」수석대표와 다년간 유엔에서 친숙하게 지냈다고 해서 이번 회담에서 너무 친하게 일본대표와 지낼건 없어. 본시 사명을 다하도록 전력을 다하게』라고 엄명했다.
여담이지만 임수석대표는 이런 점과 관련해 기어이 이대통령의 노한 꾸지람을 들었다. 4월16일 상오 임수석은 이대통령의 전화를 받았다. 李대통령은 대뜸 노한 목소리로『오늘 조간신문을 보니 자네가 일본대표하고 악수하고 있는 사진이 실려있는데 그렇게 친절히 굴건없어』하고 말해 임수석을 얼얼하게 했다. 이대통령은 또 이날 공보처로 하여금 석간신문에 그 사진을 못싣도록 조치했다.
이대통령의 이같은 신경과민일 정도의 대일관의 편린을 하나만 더 짚고 가보자.
58년초부터 실시된 억류자 상호석방 때 일본은 자기나라 어민들을 태우고 갈 배를 보내겠다고 제의해 왔다. 그 보고를 받은 이대통령은 『이사람들아, 정신차려. 이것도 제의라고 받아와. 어떻게 일장기를 단 일본배를 우리 항구에 돌어오게 하나』라고 한마디로 일축했다.
회담 하루전인 4월14일 임수석·이호·장경근양대표, 전문위원인 고고학자 황수영씨(현동국대총장)는 일본에 도착해 「사와다」씨의 따뜻한 영접을 받았다.
임수석은 15일상오 일본외무성 회의실에서 본회담개회에 앞서「사와다」씨의 안내로 「기시」수상과 「후지야마」외상을 예방하고 상호 원만한 회담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해 회담전망은 일순 밝아보였다.
양측간의 최대쟁점의 하나였던 일본의 대한재산청구권이 포기되고 평화선이 의제에 포함되는 등 어려운 절차문제가 해결된 상황이어서 우리측은 순조로운 회담전망을 갖고 있었던것이 사실이다.
임수석은 회담개회사를 통해 『우리정부는 본회의가 정의와 평등과 성의의 원칙에서 진행돼야 한다고 믿고있다. 우리의 성의는 과거 많은 기회에 실증된 바 있으며 우리는 또한 일본측에서도 똑같이 성의를 베풀어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사와다」일본측 수석대표도 『오늘의 세계는 공포와 불신으로 가득차 있다』고 전제, 『한일양국은 가까운 인방이며 양국이 형제국으로서 어깨를 나란히 하여 영구적 평화에의 길로 전진해야 할 때가 도래했다』고 화답했다.
첫날의 본회담은 상호 대표단의 소개로 끝났다. 그러나 그후 회를 거듭하며 열린 회의를 통해 일본측은 우리의 기대와는 동떨어지게 이미 예비회담을 통해 합의된 의제채택문제부터 시비를 거는 무성의로 일관해 회담의 전도에 암영을 던졌다. <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