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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생각은

쌀 비준안 반드시 통과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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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것은 무역자유화 추세나, 70%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대외의존도에 비추어 불가피한 것이고 쌀 생산농가에 대한 가시적인 피해가 곧 발생할 것으로도 생각되지 않는다. 이미 중국 쌀이 '찐쌀'형태로 수입되어 일부 서민층에서 소비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준을 반대하는 농민들의 시위가 거세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치권의 우유부단한 태도와 농민들의 이해 부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일부 정치권은 이번 농민들의 비준안 처리 반대에 동조하거나 주저하는 태도를 보였다. 농업인구는 총인구의 7%에 불과해도 '인구밀도가 낮은 농촌 선거구에서의 비교적 높은 투표율'로 나타나는 이들의 영향력 때문이다. 한국-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때에도 농민들의 시위가 있었고 정치권은 '직불보조금' 등 농산물 무역자유화에 대한 대가 내지 농민시위에 대한 '보상'을 내놓았다. 그러나 한국-칠레 FTA 체결 1년 후 처음 예상했던 농민들의 피해는 별로 발생하지 않았으며 보조금 지급은 농촌 소득불균형의 심화라는 부작용도 낳았다.

현재 협상안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쌀경작 농민들이, 이번 비준안 처리의 불가피성에 대한 이해는 접어두더라도, 비준안 처리를 반대할 명문과 이유가 있는가.

현재 우리나라 쌀 농업은 그 고비용 구조로 쌀값이 외국산에 비해 서너 배 비싸다. 더구나 이 비싼 쌀값도 막대한 정부보조금이 투여된 결과다. 예컨대 농업경영인 A씨가 경작하는 논이 자기소유 4000평(20마지기)과 10여 명의 임대인에게서 빌린 2만평(100마지기)을 합하여 2만4000평이라 가정하면 여기에 '직불보조금'이 1000평당 20만원씩 약 480만원이 A씨에게 지급된다. 올해부터는 '변동직불보조금'이 일종의 가격지지제도로서 보충적으로 지급된다. 사실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상 허용될 수 있는 각종 보조금으로 A씨의 쌀 생산을 지원하는 셈이다.

이런 보조금은 물론 국민의 세금이다. 올해 쌀 경작농민에게 지급될 보조금은 8000억원에 이르고 내년에는 1조원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또한 정부는 쌀 공공 비축물량을 현재 300만 섬에 100만 섬을 더 추가하려 하는데 이 경우 500억원의 매입비용 외에 잉여 쌀 보관비의 대폭적인 증가가 예상된다.

여기서 1848년 영국의 '옥수수법 폐지 사건'을 둘러싼 토론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논의는 어떤 정책이 "어느 누구의 후생을 감소시키지 않으면서도 전체 후생을 증가시키는" '파레토(Pareto) 원칙'에 부합해야 한다는 주장과 그에 대한 칼도(Kaldor) 등의 반론이다. 칼도는 '옥수수법 폐지'로 곡물가격이 하락하면 다수의 노동자가 이익을 보고 지주들이 손해를 보지만 노동자들의 이익 총량이 지주들의 손해보다 훨씬 크므로 노동자의 이익 일부로써 지주의 손해를 보상할 수 있다는 '보상이론'을 제안하여 법경제학의 단서를 열었다.

사실 쌀 생산농가를 위해 우리나라 비농업 서민들은 외국 쌀에 비해 서너 배 비싼 국산 쌀 소비가 강제되어 상당한 후생의 감소를 감수해야 하고 여기에 세금 증가라는 2중부담을 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칼도의 이론과도 대단히 상치된다. 농촌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나 역시 어려운 도시 서민들의 이익이 희생되고 있음을 쌀 경작 농민들이 간과해서는 안 되며 더구나 도심에서의 격렬한 시위는 말이 안 된다.

이번 비준안은 미국 등 협상상대국과의 국제적 합의로 당연히 비준.이행되어야 한다. 만약 비준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농산물시장의 개방과 농업보조금 삭감이 거론되는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에서도 우리 농민에게 결코 득이 될 리 없다. 또한 비준안 통과에 따른 추가적 지원책보다는 현재 심각한 농촌 소득불균형을 해소한다는 측면에서 쌀 생산농가에 지급되는 각종 보조금의 일부를 농촌의 저소득층 몫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강구해볼 만하다.

류병운 영산대교수.국제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