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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기자의 하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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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청와대 춘추관에는 출입기자들이 상주한다. 이 곳은 늘 만원이다. 노무현 정부 출범 후 기자 수가 늘기도 했지만 마땅히 갈 만한 다른 곳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새 정부는 대통령 집무실은 물론 비서동에 대한 기자의 출입도 막고 있다.

그래서 기자들은 "청와대 출입기자가 아니라 춘추관 출입기자"라는 농반진반의 이야기를 나눈다.

18일 현재 등록된 정식 출입기자는 49개사 85명. 그러나 주요 언론사의 경우 1,2명씩의 지원인력이 있어 상주기자는 1백명이 넘는다. 출입신청을 한 기자 수는 스포츠지.인터넷매체 등을 포함해 2백4명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결정적 이유는 盧대통령의 새로운 언론정책 때문이다. 청와대는 지난달 4일 문희상 비서실장의 생일파티를 겸해 딱 한번 기자들에게 비서동을 개방했다. 盧대통령은 이 자리에 나와 다음과 같이 짤막히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기자들이)속으로 '얼른가시오, 별로 반갑지도 않지만 (내가 말이 많다보니)오래 얘기하다 또 무슨 사고 치려고 하느냐'할지 모르겠다. …쩨쩨하게 기자실이나 바꾸고 오보에 대응한다고 책망을 많이 하는데 언론과 다소 긴장하고 합리적인 관계로 가는 게 변화의 조그만 계기가 되지 않겠나."

대신 청와대가 선보인 것인 정례브리핑을 통한 정보 제공이다. 청와대는 '충실한' 브리핑을 약속했고, 수도 없이 다짐해왔지만 실제 브리핑 내용은 매우 공식적이고 형식적이다.

가령 수석보좌관회의.국무회의 등에 대한 브리핑은 대개 "회의에서 ~에 대해 많은 토론이 있었다"는 정도로 끝난다. 누가 어떤 주장을 했고, 반대는 없었는지 등은 공개하지 않는다. 팔이 아프도록 대변인 브리핑을 노트북에 받아 치지만 알맹이가 없을 때가 대부분이다.

이러다 보니 기자들이 가장 많이 의존하는 방법이 개별 전화취재다. 하지만 전화를 꺼놓거나 기자들이 모르는 번호로 바꿔놓은 수석.비서관.행정관들이 많아 효율성은 점차 떨어지고 있다. 구내전화를 하면 "회의 중"이란 답이 돌아오는 일이 많다.

가뭄에 콩나듯 점심 또는 저녁식사 약속이 잡히기도 한다. 접근이 차단되고 정보가 단절되다 보니 이런 술자리.식사자리에서 있었던 일들까지 기사화되곤 해 고위 간부들이 "발설자를 찾아내겠다"고 펄펄 뛰는 것이다.

춘추관은 요즘 내부공사가 한창이다. 과거의 폐쇄적 기자실 형태를 명실상부한 개방형 브리핑 시스템으로 바꾸기 위해서다. 그러나 개방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질과 양이 종전보다 나아질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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