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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바로서려면] 상. 전·현직 간부 50명에게 들어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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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과거엔 국내파트가 정보기관의 70%를 먹여살린다고 했다. 대통령에게 가는 보고서의 70%가 국내 것이었다는 얘기다."(전직 해외차장 A씨)

"DJ 시절, 국내정치 하지 말라는 말은 많았지만 내부적으론 '왜 보고서 양이 적냐. 국내정치 보고 더 쓰라'고 닦달했다. 정책과는 상관없이 주요 인사들의 신변.가십 정보를 다루는 '조보'라는 보고를 계속 늘리라고 했다. 나중엔 책을 만들어줬다. 내부에서 '대작'이라 불렀다."(전직 B씨.국내파트)

#2 요원들은 망원 포섭해 전방위 도청하고

"(미림팀) 운영비는 국정원 예산 중 대공정책국 지역과의 지역담당 망원비에서 지급받았다. (이 돈으로 포섭한) 망원들이 스스로 녹음을 해 나에게 연락했다. 98년 2월엔 망원에게 맡겨놓은 녹음기를 받아오니 망원이 개인적으로 녹음해 놓은 내용이 일부 있었다."(본지가 단독 입수한 공운영씨 검찰 진술 조서)

#3 돈으로 정치인 회유하고

"안기부 시절엔 국회의원의 대정부 비판이 강하면 청와대에서 부장을 통해 '순화할 방법을 찾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안기부는 기본적으로 돈을 주는 거다. 현안이 있을 때 의원에게 주는 돈이 한 100만원…. 그래서 정보기관 돈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나왔다."(전직 C씨.국내파트)

국정원에서 평생을 바친 정보맨들이 취재팀을 만나 전한 국정원(안기부)은 '비리 백화점'이었다.

국정원이 존폐의 위기를 맞고 있다. 전직 국정원 수장 두 명이 불법 도.감청 문제로 구속되는 초유의 일마저 일어났다. 정보기관이 휘둘러 온 막강한 힘의 원천이 사실은 불법 도.감청이었다.

중앙일보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정원 전.현직 간부(4급 이상) 50명, 국회 정보위원 10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했다. 위기의 뿌리는 무엇인지, 그리고 대안은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진단하기 위해서다.

'국정원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에 대해 전.현직 국정원 간부들은 '권력자 및 실세에 대한 줄 대기, 그에 따른 사설기관화(24명.48%)'를 꼽았다. '불법 도.감청(21명.42%)'이 다음이었다. 국회 정보위원도 10명 중 4명이'권력자의 사유화'를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했다.

국정원이 국민을 위한 기관이 되지 못한 근본적인 원인이 도.감청 행위 자체보다 권력자와의 유착관계라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불법 도.감청도 결국 권력자 또는 실세들에게 충성하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것이다.

'불법 도.감청이 관행화된 이유'에 대해서도 전.현직 간부들은 '집권자의 국내 정보 요구(31명.62%)'를 일차적으로 꼽았다. 국회 정보위원들도 '집권자의 국내정보 요구(7명)'를 가장 중요하다고 봤다.

그렇다면'가장 시급한 개선책'은 무엇일까. 전.현직 정보맨의 절대다수는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는 인사제도 마련(44명.88%)'을 들었다.

취재팀이 5공~참여정부 국정원장(안기부장 포함), 국내.해외 차장, 기조실장 등 수뇌부 64명의 출신지를 분석한 결과 5공~문민정부의 국정원 수뇌부 41명 중 호남 출신은 1명뿐이었다. 반면 국민의 정부에선 국정원 수뇌부 15명 가운데 영남 출신이'0%'였다.

특별취재팀

탐사기획팀 = 강민석.김성탁.정효식 기자,
정치부 = 강주안 기자

◆ 취재 방법=최근 두 달 동안 정보맨들을 직접 만나 쟁점에 대한 견해를 듣고 이를 취합해 통계화했다. 증언은 가급적 공개하되 국정원 직원법을 감안해 증언한 인사들을 비실명 처리했다. 이들은 처음엔 "정보요원들은 무덤까지 비밀을 가져간다"며 접촉을 피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국정원이 바로 서야 하지 않겠느냐는 설득에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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