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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뒤흔드는CIA비밀수용소] 스페인 등 CIA 불법 지원 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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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CIA 비밀 수송기가 테러 관련 핵심 용의자를 해외 비밀 수용소로 실어나르는 과정에서 유럽 여러 나라가 알게 모르게 협조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스페인이 중간 기착지로 허브 역할을 했고 다른 북유럽 국가들은 가끔 기착을 허용했으며, 동유럽 국가들은 용의자를 감금.고문하는 수용소를 운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 대륙이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불법적인 테러 용의자 수송.감금 논란에 휩싸였다. 워싱턴포스트가 지난 2일 CIA의 불법 수용소 운영 사실을 폭로하면서 유럽 국가들이 연루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CIA의 요구에 따라 많은 유럽 국가가 테러 용의자를 실은 비행기의 기착을 도왔으며, 일부 동유럽 국가는 비밀수용소를 운영하면서 불법 감금과 고문 등 가혹행위까지 자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국가에서 진상해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18일 "CIA의 음모와 관련됐는지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나라들이 계속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어느 서유럽 국가가 CIA의 '날아다니는 감옥(비밀 수송기)'에 중간기착을 허용했는지, 그리고 어느 동유럽 국가가 불법 감금.고문에 참여했는지 밝히라는 요구가 계속 높아질 것"이라고 전했다.

비밀 수용소를 운영한 것으로 지목된 폴란드와 루마니아는 보도 직후 이를 부인했다. 그러나 CIA에 협조한 나라들은 최초 보도보다 더 많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르피가로에 따르면 몇몇 유럽국가들은 CIA의 요청에 따라 비행기의 정체를 정확히 모르는 가운데 기착을 허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기착을 허용한 행위도 불법을 도왔다는 점에서 비난받긴 마찬가지다.

가장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는 나라는 스페인이다. 대서양에 떠 있는 스페인령 카나리아 군도와 발레아레스 군도가 유럽과 미국을 연결하는 CIA 비행기의 주요 기착지로 사용됐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테러 용의자들을 실은 CIA 비행기는 14차례 스페인을 경유한 것으로 밝혀졌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스페인 정부는 17일 문제의 장소와 관련된 정보 공개를 약속했다.

북유럽 국가에서도 CIA의 불법을 도왔다는 의혹이 높다. 스웨덴 총리실은 "CIA 비행기 두 대가 스웨덴에 착륙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덴마크 정부는 "CIA 비행기가 2001년 이후 20여 차례 불법적으로 덴마크 영공을 통과했으며 한 차례 기착하기도 했다"고 공개했다. 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의 발트 3국에서도 CIA 비행기가 중간기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노르웨이는 의심스러운 미국적 비행기 기착과 관련해 미국에 "CIA 관련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북아프리카 국가도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모로코가 중간지착지로 이용된 사실이 확인됐다.

국제사면위원회(AI)는 "N227SV로 등록된 CIA의 걸프스트림 4기가 2002년 6월부터 2005년 1월 사이 아프가니스탄.두바이.요르단 등지로 수차례 비행했다"고 밝혔다. 이 비행기는 미군 수용소가 있는 쿠바의 관타나모 기지에 51번 착륙했다. 이 비행기는 관타나모에 수용된 테러 용의자 가운데 핵심 인물을 해외 비밀수용소로 옮기는 CIA 특별수송기로 추정된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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