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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포프」는 과도기지도자인가|83년의 소련내외정책 변화를 살펴보면…|「결근」잦지만 기반 든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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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해가 다 가도록 소련의 지도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의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임은 잇달아 열린 당중앙위와 연방최고회의 모임에서 또렷이 느껴졌지만 너무나 오랜 자리비움이 낳은 안팎의 의구심을 아주 풀어버리기엔 모자랐다. 83년의 소련은 또 이미지와 유식이란 것이 국제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어느때 보다도 사무치게 겪어야했다.
1백34일째 공식석상에 나타나지않는「유리·안드로포프」서기장은 대체 어찌된것일까.
이제까지 흘러나온 얘기들을 종합해보면「안드로포프」서기장은 소련역사상 전례를 찾기힘든 긴 잠적기간외 대부분을 병원, 아마도 모스크바근교 쿤체보에 있는 당중앙위원전용 특별요양원에서 보낸것으로 믿어진다.
병명은 당국의 발표로는 감기증세. 그러나 모든 정황으로 미루어 훨씬 위중한 것임에 틀림 없다. 예전의 병력은심장·당뇨·뇌혈관·신장병등. 이중 요즘엔 특히 신장이 문제여서 인공으로 콩팥기능을 대신케하는 투석(투석)요법을 받고있다는 보도가 많이나왔다.
그런 가운데도 소련지도부엔 별다른 흔들림의 기미가 없었다. 서기장이름의 성명이 잇달아 발표됐고 당과 정부관리들은 그의「건재」를 거듭 강조했다.
지난달 11일엔 지도자의 자리비움이 불러일으킬지도 모를 당내 움직임에 경고라도 하려는듯 국방성고위 간부들과 모스크바 지역군사령관들이 모여 이례적인 「안드로포프」노선전폭지지 서한』을 정치국아닌 서기장 개인앞으로 보냈다.
26일의 당중앙위전체회의에서 뽑힌 새 정치국원(「솔로멘체프」,「보로트니코프」)과 정치국 후보위원(체브리코프), 당서기(리가초프)등 4명중 뒤의 두사람은 서기장의 오랜 측근이며「보로트니코프」 도「브레즈네프」사후 중용되기시작한 인물이란 사실은 적어도 당분간「병」이외의 힘에의한 현체제의 변동은 없으리라는 전망을 가능케한다.
정치국원들의 파벌을 가리는것은 대체로 막연한 추측놀음이지만 이번 인선으로 서기장계열이 숫자적으로도 주도권을 잡게됐다는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새인물들중 70객인「솔로멘체프」를 빼곤 모두 60세내외로, 지도층이 젊어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거리다.
그러나「안드로포프」는 뛰어난 정치기술과 당·외교엘리트·군의 든든한 지지기반에도 불구하고 건강때문에 처음 예상했던 것처럼 과도기의 지도자로 끝나리라고 봐야할것 같다.
□…집권초부터「안드로포프」서기장의 이미지와 그에 대한 기대의 주조는「기강확립」과「경제개혁」의 두가지였다. 이중 집권첫해에 보다큰 진전을 보인것은 기강확립과 부패추방쪽이었다.
연초에 눈길을 끌었던 근무태만노동자 가두단속은 요즘엔 잠잠해겼지만 당·정부쪽에선 숙청작업에다 새 지도자가 들어서면 으례있는 인사이동과 새대교체까지 겹쳐 지난 1년여사이에 모스크바의 당·정부 고위간부 1백명남짓을 포함해 전체 중견급간부의 10%가까이나 갈렸다는 얘기다.
이에 비해 경제개혁쪽은 훨씬 조심스럽게 다뤄지고 있다. 서방관측통들이『「안드로포프」 에겐 개혁의사가 없다』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고도로 중앙집권화되고 그속에 안주한 관료세력이 막강한 형편에서, 더구나 소련같은 초대규모의 경제체제에서 한두해사이에 큰 변화가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난센스다.
국내문제에서 소련은 아직「석정」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것이다.
□…국내문제보다 더 신중히 곱씹어 보아야할것은 소련이 미국·한국등 다른나라들과 부대끼며 겪은 이미지의 갈등문제다. 올해 소련은 국제관계에서 사실상 아무런 수확도 거두지 못했다. 제네바 INF협상결렬과 미국중거리미사일의 유럽배치개시는 올외교의 가장 큰 실패로 꼽히고, 중동에선 PLO내분을 둘러싸고 대시리아 영향력의 한계가 드러났으며, 미국의 그레나다침공은 소련의 서반구동맹국 지원능력에 의문을 던졌다.
대중공관계개선도 지지부진하고 소련외교관과 민간인들이 곳곳에서 스파이혐의로 축출됐으며 미국의 군비확장과 대소「악전」은 갈수록 극성이다. 그리고 KAL기격추사건.
KAL기사건은 주관적 지각과·현실의 거리때문에 벚어진 일이었다. 그것은 바깥세계를 모두 잠재적인 적으로 보는 소련의 눈과 그에 따른 국가안보에 대한 절대적 관심에서 비롯됐다.
그런 고정관념은 러시아가 겪은 1백차례 남짓한 외침과 볼셰비키혁명직후에 있은 10여개국의 무력간섭, 2차대전에서의 엄청난 희생, 미국이주도하는 군사동맹체제에 포위됐다는 불안감등에 의해 형성되고 이데올로기와 민족주의로 보강돼왔다.
한편 이 사건에 반응하는 쪽에서도 냉전시대에 얽힌 나름대로의 고정관념으로 맞섰다. 모두가 실체아닌 그림자와 씨름한 셈이었다. 이런경우 양쪽은 각기 자신이 가진 단순한 세계상과 어굿나는 정보나 논리는 의식적또는 무의식적으로 거부하거나 왜곡하게 마련이다.
그리고는 자기 인식의 올바름과 현실성을 굳게 믿는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이른바「유식적 조화」의 추구다.
군축문제를 둘러싼 미소의 대립도 국가간에 서로의 이미지가 충돌할때 빚어지고 악화되는 갈등상황의 전형적예다. 서방축, 특히「레이건」의 미국은 스스로를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생각하며 소련을 이데올로기적이며 패권주의, 군국주의적, 극단적인 체제로본다. 한편 소련쪽에서도 미국의 반소정책을 한때의 전술로 보지않고 사회주의 세계건설의 사명을 띤 소련의 존립권과 국제지위에 대한 근본적거부로 받아들이면서 미국이 소련에대해 가진것과 똑같은 심상을 미국에 대해 갖는다. 어느쪽의 이미지도 진실한 모습과 일치하지 않지만 양국은 자신의 인식적 조화를 본능적으로 고집하기 때문에 서로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갈등의 단계마다에서 실제상황과 양측의 지각사이엔 상당한 거리가 있게 된다. 그러나 인식의 벽때문에 양국 지도층은 합리적 탈출구를 찾기 어렵다.
70년대의 데탕트시절 조금 완화됐다가 다시 상투화된 이런류의 상호인식이 현실적인것으로 바뀔때까지 두나라의 군비경쟁은 악순환을 되풀이할수 밖에 없다. 그러나 어느쪽도 이미지의 껍질을 벗을생각을 하지 않는다.<정춘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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