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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촬영살인사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우리나라 범죄사상 처음으로 사람이 죽어가는 생생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촬영살인」(1월21일)-.
살인범 이동식(43)은 1심에서 사형, 지난달 2일 항소심에서도 사형을 선고받고 대법원 확정판결을 기다리고있다.『인간의 생명을 예술창작이란 명목의 도구나 수단으로 삼을수 없을뿐더러 죽음을 눈앞에 보면서 피해자를 구하기는커녕 사진을 찍는 행위는 범죄의 잔인성에서 그 어떤 범죄보다도 극심하여 피고인을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 판결문의 이유였다.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인 이피고인은 그동안 옥중에서 천주교에 귀의, 참회의 나날을 보내고있다.
범인 이는 요즘『모든 것은 하느님이 심판하실 것이며 나의 잘못으로 사람이 죽었으니 그 죄를 마땅히 받아야한다』며 다가올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한다고 담당변호인 박영서변호사는 전했다.
숨진 김양은 사건직후 경북경주에 사는 어머니가 올라와 화장해 버렸다.
이피고인이 버스안내양을 모델로 했던 자작 누드사진을 보여주며『사진모델로 출세시켜주고 돈도 많이 벌게해주겠다』고 김양을 꾀었던 서울 가락동 이발소는 여전히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피고인의 부인(33), 쌍둥이 아들(5), 전처소생의 딸(10·국교4년)등 가족 4명은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지난4월 6백만원에 전세든 서울 가락동시영아파트를 떠나 시흥동에 12평짜리 무허가 한옥을 2백50만원에 사 이사했다.
부인은 파출부등으로 번돈 15만원으로 어렵게 생계를 꾸려나가며 상오10시쯤 나가 밤늦게 귀가한다.
쌍동이 아들들은 외증조모(74)가 돌보고있다.
이웃 김모여인(34)은『처음에 과부라며 집을 구했던 부인이 남자 옷가지등을 빨래하는 것으로 보아 남편을 자주 면회가는것같다』고 말했다.
항소심 선고후 면회를 갔느냐는 물음에 눈물을 글썽이며 부인은『생계를 꾸려나가기 어려워도 산사람은 괜찮으나 애기아빠가 불쌍하다』고 했고, 쌍동이 형제는 천진난만하게 강아지를 끌어안고 놀고있었다.
이피고인의 퇴직금은 물론 애지중지하던 카메라 렌즈등을 팔아 마련한 1백80여만원도 변호비와 뒷바라지에 다 써버렸다고 한다.
한편 이피고인과 72년9월 동거, 딸까지 두고 9년동안 소식이 없는 방옥수씨(31)는 아직도 여전히 행방이 묘연하다.
소재수사에 나섰던 경찰은 이피고인이 방씨에게도 성도착행위를 일삼았고 밤마다 방씨를 벗겨 밧줄로 묶어놓은채 사진을 찍는 점등을 밝혀내고 살해여부를 추궁했으나 이렇다할 진전을 보지 못했으나 지금도 P모형사는 집념을 포기하지않고 계속 수사를 하고있다.
방씨의 국민학교 동창생 정모씨(32·여·서울당산동)는 당시 서울번동에 살던 방씨가 74년2월중순 이피고인과 싸운 뒤 찾아와 서로 헤어지기로 했다면서 내일 짐을 꾸려 나오겠다고 말한 다음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고 했다.
경찰은 촬영살인직후 이피고인의 짐을 수색, 방씨의 신체일부분으로 보이는 것을 찾아내당시 서울고척동 영등포구치소에 수감중인 이피고인을 다그쳤으나 자백을 얻지 못했다.
경찰은 또 사건직후 방씨의 둘째오빠 재일씨(49·서울 신설동114)를 찾아와『10년전일 들먹이지 말라』고 협박했던 박모씨(44)의 소재를 파악, 수사를 펴고 있는 실정.
이피고인에게『죽였으면 뼈라도 찾게해달라』고 맞대면을 하기까지한 오빠 재일씨는『요즈음도 명절때면 옥수가 나타날 것만 같다』며 안타까와했다.
이피고인의 촬영살인은 일반시민은 물론 작품창조를 추구하는 예술가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예술가들은 예술은 인간의 존엄성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어떠한 명분으로도 인간을 희생시켜가며 창작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사건은 이웃 일본에서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켜 사진전문지인「포커스」에서 중앙일보가 특종으로 보도했던「죽어가는 여인」의 처절한 모습을 전재했다.
또 촬영살인의 범증이 필름이 시네라마로 보도되자 신문의 윤리성과 독자에게 알려야할 의무와의 판단을 놓고 찬반이 한때 일기도했던 사건이었다. <도성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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