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 날아든 새를 놓아주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퇴근길에 그 구둣방 앞을 지나며 진열장에 억지로 날개를 펴고있는 갈매기 한 마리의 박제된 모습을 만난다. 으례 그 바닷새의 우울한 눈에서 먼 바다를 떠올린다 구두가죽처럼 차디찬 강요, 물결치는 삶의 바다, 그리고 시방 어느 바위기슭에서나 날개를 접고 서로의 죽지를 내밀어 겨울을 보내고 있을 저 살아있는 것들의 삶에 대한 열정을 이시대 사람들은 얼마나 중요시하고 있는가
얼마 전이었다. 갑자기 소란해진 교실, 길을 잘못 든 새한 마리가 유리창으로 들어와 몇번인가 탈출구를 찾다가 머리를 부딪치고 끝내 우리 아이들의 손에 잡혔다. 무슨 새일까. 잿빛의 목을 움츠리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가슴을 콩콩거리고 있는 그것을 아이들은 호기심에 찬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이 새를 어떻게 할까?』『박제를 만들어요, 선생님.』
누가 그런 말을 꺼냈을까. 순간 그 구둣방의 갈매기와 생사람을 실험용으로 썼다는 나치하의 아우슈비츠가 떠올랐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새가 들어왔던 유리창가로 가서 가만히 새를 놓아주었다 실망에 찬 아이들의 표정, 그러나 놀이감을 놓쳐버린 그 눈들은 새가 지나간 뒤에 남겨놓은 푸른 하늘처럼 맑다. 자, 생각해보자 누가 저 살아있는 것을 죽일수 있겠는가.
아이들은 늘 자유롭고 싶어한다. 지시 받고 명령받고 강요받는 것이 공부요, 시험이요, 나라사랑일진대 도대체 이 어린것들의 참다운 정서는 어떻게 할것인가. 어린이에겐 꿈이 있다 구멍을 기운 양말로도 떳떳할 수 있게, 꽁보리밥이라도 즐겁게 내놓고 먹을수 있게, 자기에게 떳떳한 마음을 키우는게 우리시대의 교사가 할 일이라면, 차렷자세로 꼬박 서서 긴 조회시간을 지루하게 보내고 있을때 머리 위로 왁자지껄 날아가는 비둘기 떼를 바라보느라 정신이 팔린 아이에게 『움직이지 마! 차렷! 』이라고 나는 강요할수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