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한 달에 서너 명 워싱턴행 '외교 로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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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3일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선 웬디 셔먼 차관의 발언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노광일 외교부 대변인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한·미가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답을 되풀이했다. ‘한국 정부는 셔먼 차관의 발언을 어떻게 판단하느냐’고 묻자 “셔먼 차관의 발언에 대해 문제가 있다, 없다 판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만 했다.

 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도 마찬가지였다. 마리 하프 국무부 부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셔먼 차관의 언급이 결코 정책 변화를 반영하는 게 아니다”며 “셔먼 차관이 특정 인사나 특정 국가를 지칭하려 한 것도 아니다”고 해명했다. 브리핑 중 한국에 우호적인 ‘동해(East Sea)’라는 표현도 사용했다. 국무부는 외신기자실에 낸 별도 논평에선 “무라야마(村山) 전 총리와 고노(河野) 전 장관의 사과는 일본이 주변국과 관계를 개선하는 데 중요한 장을 열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한·미 외교 당국은 셔먼 차관의 발언 파문을 진화하려 진땀을 흘리는 모습이다. 하지만 두 나라 정부의 진화에도 불구하고 한·중·일 과거사 분쟁에 대한 미국의 시각이 변했다는 우려는 커지고 있다.

 국립외교원 김현욱(미주연구부장) 교수는 “셔먼 차관의 발언 배후에는 일본의 치밀한 로비로 인해 변하고 있는 워싱턴의 분위기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싱크탱크들과 왕래하는 국내 학자들은 근래 들어 일본의 로비력을 체감하는 정도가 강해졌다고 전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제관계 전문가는 “아베 정권이 들어선 뒤 일본 정부와 의회 관계자들이 거의 한 달에 서너 명꼴로 워싱턴을 찾아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한다”며 “일본이 자금을 대는 공동 프로젝트도 많지만 무엇보다 워싱턴 조야와 일본 정부 간에 소통이 가능한 채널들이 여럿 형성돼 있다”고 전했다.

 미국 조야 인사들의 친(親)일본 성향 발언도 빈번해지고 있다. 데니스 블레어 일본 사사카와(笹川)평화재단 이사장은 지난 1월 8일 “일본이 과거 끔찍한 일을 저질렀지만, 한국도 베트남전 때 아주 무자비했다”고 말했다. 블레어 이사장은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 출신이다.

 박진(현 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전 국회 외통위원장은 “한·일 관계에서 워싱턴 오피니언 리더들과 한국 정부 사이에 인식 차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미국은 한·일이 역사 문제에 발목 잡혀 있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데, 이에 대해 우리 입장을 정확히 알리고 이해시키는 공공외교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서울=안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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