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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각보와 이탈리아 명품 의자가 만났을 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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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한국형 프루스트 의자’. 멘디니는 .수공의 격조가 더해졌다.고 말했다. [사진 아틀리에 멘디니]
지난해 6월 서울 정동 강금성(오른쪽)씨의 작업실을 찾아온 멘디니.

알렉산드로 멘디니는 1978년 앤티크 의자를 사서 수많은 색점을 찍은 뒤 ‘프루스트 의자(Poltrona di Proust)’라고 이름 붙였다. 반항적이고도 유머러스한 이 의자는 멘디니의 디자인 철학 ‘리디자인(redesign)’의 대표 아이콘이 됐다. 기능성이나 상업성에 반기를 들며, 더 이상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일을 중단하고 기존의 상품을 재활용하자는 취지다.

 이탈리아의 저명 디자이너 멘디니(84)의 프루스트 의자가 한국의 조각보 장인 강금성(56)씨의 손을 거쳐 ‘한국판 프루스트 의자’로 재탄생했다. 신인상파 회화의 색점을 연상시키는 무늬 대신 다채로운 조각보 비단을 덧씌웠다. 고전과 현대, 기품과 키치가 혼합된 현대 디자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프루스트 의자와 한국 조각보 공예가 손잡은 셈이다.

이 한국판 프루스트 의자는 오는 12일 개막하는 제9회 프랑스 생테티엔 국제 디자인 비엔날레에서 첫선을 보인다. 한국은 ‘활력(Vitality) 2015: 공예와 디자인을 넘어서’(총괄디렉터 최경란 국민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장)라는 특별전을 선보인다.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와 양병용, 승효상과 박태홍 등 건축·디자이너와 장인이 협업한 가구, 황갑순의 도자 등을 전시한다.

 멘디니는 바로크식 안락의자에 프랑스 화가 폴 시냑식의 점묘화를 찍은 프루스트 의자에 대해 “절대적으로 새롭고 독창적이되 기존 재료에서 태어난 것을 만들자, 낭만적 사물에 대한 시각적 이야기인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오마주(존경)가 될 프로젝트를 하자, 정확히 디자인도 조각도 그림도 아니지만 이 세 가지를 겸비한 애매모호한 이미지를 만들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한국판 프루스트 의자에 대해서 멘디니는 “첫 번째 프루스트 의자를 만든 뒤 여러 재료와 직물로 변형을 시도했고, 청동·플라스틱·세라믹·모자이크를 활용해 크기를 축소하고 확대하기도 했다. 강금성씨 직물의 다채로움에 감탄해 거기 맞는 채색을 고심한 협업의 결과가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강금성 빈컬렉션 대표는 “우리 조각보의 진화를 이룬 듯해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조각보는 뒷면의 예술이다. 수많은 세모꼴 천을 바람개비 모양으로 누비기 위해서는 정확한 재단과 바느질, 즉 보이지 않는 뒷면 처리가 중요하다. 이번 첫 의자 작업에서는 뒷면에 심지를 덧대 내구성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1931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난 멘디니는 59년 밀라노 폴리테크니코 건축학부를 졸업했다. 건축 전문지 ‘카사벨라’ ‘모도’ ‘도무스’ 편집장을 지냈으며, 58세인 89년 밀라노에 ‘아틀리에 멘디니’를 열며 디자이너로 새출발했다. 카르티에·에르메스·스와로브스키·알레시·스와치 등과 협업했다. 지난달 유러피언 건축가상을 수상했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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