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파트의 유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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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장의 외신 사진은 「아라파트」의 웃는 얼굴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PLO의 한 전사가 트리폴리를 떠나며 자신의 딸을 끌어안고 있는 장면이다.
정처없는 유랑-, 홉사 유행가의 센티멘털한 노랫가락처럼 된 「아라파트」와 그 추종세력들의 현실이다.
벌써 영국의 시사주간 이코너미스트지는 그를 중동 역사속에 매몰된 「과거의 인물」처럼 표현하고 있다. 「실패한영웅」이라는 표제도 눈에 띈다.
「아라파트」는 1969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장에 취임할 때만 해도 우리 시대의 가장장렬한 영웅같았다. 질풍노도같은 웅변에 호탕한 제스처며 제3세계를 열광시키는 인기는 가히 절세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는 팔레스타인인이 발붙일 한치의 땅도 얻지 못했다. 한치의 땅은커녕 「상처뿐인 영광」을 안고 있을 뿐이다.
바로 이것이 PLO의 내분을 눌러일으켰으며, 누구도 아닌 PLO의 다른 한 파에 의해 트리폴리에서마저 쫓겨나는 신세가 되였다.
그의 모욕적인 추방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PLO의장이 된 바로 이듬해인 1970년엔「후세인」왕에 의해 요르단에서 쫓겨났다. 악명 높은 과격 테러사건에 대한 응징이었다. 76년엔 레바논내전중 시리아군에 쫓겼으며, 지난해엔 이스라엘군이 그를 베이루트로부터 밀어냈다.
그때마다 「아라파트」는 승리의 V자 사인을 보여주었지만 지금까지 그에겐 패배의 그림자가 따라다닐 뿐이다.
이코너미스트지는 그의 가장 큰 실책으로 지난해 「레이건」미국대통령이 제안한 팔레스타인 해결안에 대한 우유부단을 지적하고 있다.
이 안을 재빨리 수락한 요르단의 「후세인」왕에게 동조했으면 그에겐 발붙일 자리와 명분이 주어졌을 것이라는 얘기다.
결국 그의 약점은 위기에 도전하고 직면하는 결단력도, 정치가다운 능력도 없는 것이 아니냐는 회의를 자아내게 했다.
또하나의 약점은 삼모진의 무능과 부패다. 「무능」의 실예는인사관리다. 비겁자, 도망자, 아첨하는 무리들을 요직에 기용. 게다가 친족들을 불러들여 조직의 단결력마저 약화시킨것 같다.
이런 조직일수록 부패는 뒤따르게 마련이다. 그의 관료들은 세계 각소에 호화판의 별장과 부동산을 거느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더 타임즈지(런던)에 의해 널리 폭로된 일이 있었다.
그러나「아라파트」에게 강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테러 일변도에서 정치적 안결을 중요시하는 전술적 전환을 이룩한 것은 그의 도덕적 기반을 튼튼하게 해주었다. 문제는 그것마저 GMS드는「아라파트」의 약점이다.
국가 창건의 대망을 품은 위인치고는 더없이 불행한 일이다. 그의 불행은 세계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도 불행을 안겨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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