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한 연극으로 승화된 뮤지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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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가씨와 건달들(에이브·버러우스작 문석봉연출)』은 제목이 말해주듯 심각한 연극은 아니다. 즐거움을 주는 것이 목적인 전형적인 미국취향의 뮤지컬이다. 그렇다고 이 연극에 유명한 가수나 탤런트가 출연하지는 않는다. 이 극단 저 극단을 별 명성 없이 전전했지만, 평균 4∼5년 이상의 순수한 연극경력을 쌓은 30명의 배우들로 이루어졌다. 『아가씨와 건달들』은 두가지 커다란 뜻을 갖는다.
첫째로 뮤지컬도 단지노래나 춤의 요란한 전시이기 이전에, 얼마나 풍요한「연극」일수 있는가를 최초로 보여주었으며, 둘째로 돌멩이처럼 눈에 띄지 않던 배우들도 보석처럼 닦여져서 서로 어울리는 자리에 놓였을 때-마치 올해 연말의 크리스머스 트리처럼-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인 무대를 만들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이 연극은 우리에게 낯설기는 하지만(뉴욕의 노름꾼, 금발 아가씨, 구세군…)매우 단순하고도 낙천적인 세계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그 단순한 얘기가 우리시대의 감각으로 그처럼 재미있게 엮어졌을 수가 없다. 다만-TV 매일연속극만 보던-우리관객의 속도감과, 유머를 이해하는 수준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관객들이 박수에 인색하다는 선입견은 이 공연에서 상당히 줄어든다. 김지숙의 『감기들었어요』, 이인철의 『배뒤집어진다오』와 같은 뮤지컬 넘버,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의 노름판 건달들의 춤과 노래는 관객들의 손을 저절로 가동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현재의 일반적 연기나 연출의 수준만으로도 개인적으로는 박수를 아끼고 싶지 않다. 그러나 전문적인 분야로 들어가면 미숙한 분야도 눈에 띄거니와 극평가의 기준에 따라 다른 평가가 나올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연에는 누구도 간과해서는 안될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 연극이 정공법에 의한, 다시 말해 현재 우리나라 연극의 솔직한 수준과 여건에서, 출발해, 최대한의 성실과 노력으로 만들어낸 그런 무대라는 것이다. 이번「민중」「광장」「대중」합동공연의『아가씨와 건달들』은 오늘의 우리 연극계의 내부를, 애정과 연민으로 지켜 보아온 사람들에게 있어 작은 『사건』이었으며 적지 않은 감회와 어떤 전기의 가능성을 보여준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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