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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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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미애
네이버 카페 국자인 대표

최근 국자인의 한 모임에서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책을 같이 읽었다. 와타나베 이타루라는 일본 아저씨가 시골빵집에서 빵을 만드는 과정을 자본과 노동의 관계와 비교하며 서술하고 있다. 여러 관점에서 읽는 경우가 있겠으나 학부모의 입장에서 읽어보면 아주 분명한 메시지를 마주하게 된다. 농부의 이야기다.

 농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저 “환경을 만들어주고 기다린다”. 비료를 치고 약을 치고 생산성을 높이고 돈을 더 벌기 위해 애쓰기보다 “환경만 만들어주고 기다려주면”되는 것이 제대로 된 농사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천연 유산균은 유기재배쌀을 부패시키고 자연재배쌀은 발효시킨다. 즉 유기재배가 영양과다상태여서 오히려 생명력이 약하고, 비정상적인 상태라면 균은 “이상하다 부패시키자”라고 한다. 천연재배로 강한 생명력을 가진 작물은 균에 의해 분해되는 과정에서 생명력을 유지하며, 생명을 키우는 힘으로 식품이 된다는 것이다.

 청소년뿐 아니라 초등·유아까지도 우리 아이들은 지금 학습 면에서만 영양과다 상태다. 이 아이들은 삶을 만나게 되면 부패할 것인가? 발효할 것인가?

학부모는 이제 농부처럼 환경만 만들어주고 기다리는 일을 해야 하는데 기다리기에는 너무 조급하고 욕심이 많다. 아이를 길러서 무슨 부귀영화를 볼 것이 아니라면 기다리자. 그냥 기다리자. 아이들에게 시간을 주면 어떨까? 심심해할까봐? 게임만 할까봐? 공부 안 하고 놀기만 할까봐? 걱정돼서 학원을 보내는가? 내버려두면 아이는 자생력을 갖는다는 사실을 믿고 놀거나 자거나 게임을 하거나 내버려두면 안 될까?

이제 3월. 새 학년이 시작이다. 새로운 것은 항상 긴장을 동반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몇 학년인지를 불문하고 3월에는 피곤해지고 감기에 걸리기 쉽다. 아이를 가만두는 일이 학부모에게 몸살 나는 일이라면 당장 3월 한 달 만이라도 아이를 가만히 두고 기다려주면 어떨까? 내 아이 교육에 있어서는 기다리는 일이 세상에 가장 힘든 일이다. 그 힘든 일을 학부모인 나 자신에게 미션으로 주어보는 3월이 되면 어떨지.

이미애 네이버 카페 국자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