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여명불법도청파문] 임동원·신건씨 정치에 도청 정보 활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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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국정원의 광범위한 도청 실태를 확인한 만큼 도청 정보의 외부 유출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 "정치적 목적에 이용"=검찰에 따르면 임 전 원장은 부임 후 매일 출근 직후와 퇴근 직전 8국 R-2 수집팀의 감청 내용 중 중요 사항을 보고받았다. 8국에서 매일 6~10건의 A급 정보가 보고됐고, 여기에는 도청 시간이 분 단위까지 표시돼 있었다.

임씨는 주요 현안이 발생할 때 관련 내용에 관심을 표명하거나 직접 첩보 수집을 독려하며 직.간접적으로 국정원 직원들에게 도청을 지시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신 전 원장 역시 하루 두 차례 관련 도청정보를 보고받았다. 특별한 정치 현안이 있을 경우 김은성(구속기소) 전 차장이 임씨의 지시로 도청 대상이었던 당시 민주당 장성민 의원과 주진우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비서실장 등을 만나 협조를 요청하는 등 정치적 목적에 이용했다. 도청에 쓰인 유선중계통신망 감청장비 R2에 저장된 휴대전화 번호는 현안이 있을 때마다 삭제되고 추가된 게 아니라 장비 폐기 시점까지 계속 보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전직 국정원장들이 주례보고 등을 통해 김대중(DJ) 대통령에게 도청된 내용을 보고했는지를 주목하고 있다.

김 전 차장은 첫 공판에서 "권노갑씨 특별보좌관이었던 최규선씨를 도청한 뒤 이 내용을 임 전 원장에게 보고했고, 임 전 원장은 2000년 6월께 '별보(別報)'형식으로 김 전 대통령에게 올렸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보고 여부와 관련, 검찰 관계자는 "해야 할 것은 다 한다"고 밝혀 최종 보고라인까지 수사할 것임을 시사했다.

◆ "한나라당 폭로 내용은 국정원 도청 자료"=도청 자료 유출과 관련해 한나라당 김영일.이부영 의원 등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게 됐다. 이들에게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가 적용될 수도 있다. 김.이 의원은 2002년 11월 28일과 같은해 12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30여 건이 넘는 도청 내용을 확보했다며 일부 내용을 공개했다. 이 중 박준영 당시 국정홍보처장과 박지원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사이의 취업 알선 관련 통화 등 4건이 신건 전 원장의 구속영장에 적시됐다. 검찰 관계자는 "일부 내용이 국정원의 도청 내용과 일치한 것이 확인됨에 따라 어떤 경로로 두 전 의원의 손에 이 자료가 건네졌는지 등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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