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요환의배틀배틀] 놀 때 하는 게임은 따로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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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임요환 선수, 혹시 스타크래프트 말고 다른 게임도 할 줄 아세요?"

인터뷰를 통해 종종 받는 질문이다. 그때마다 나는 "스타크래프트만 해도 시간이 부족해요"라고 대답했다. 사실 그렇다. 리그 중에는 잠자는 시간도 모자란다. '이번 리그만 끝나면 24시간 동안 잠만 자야지'란 생각은 나만의 바람이 아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스타크래프트 이외의 다른 게임을 주 종목으로 염두에 둔 적은 없다. 그래도 종종 다른 게임을 즐기긴 한다. 리그 중간에 남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기엔 '게임'보다 재밌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우선 손을 풀어야 할 때는 'Ez2DJ'게임을 한다. 10대들에겐 스타크래프트만큼 유명한 게임이다. 각종 이벤트나 전지훈련 등으로 장시간 연습을 못 하게 되면 손이 굳는다. 프로게이머의 손을 푸는 데는 이보다 좋은 게임도 없다. 예전에는 오락실에서나 할 수 있는 게임이었지만 이제는 PC로도 즐길 수 있다. 그렇다면 나의 'Ez2DJ'수준을 궁금하게 여기는 분들도 많으실 테지만, 기대하지는 마시라! 단지 즐기는 수준이니까.

스타크래프트 후속작으로 폭발적 인기를 누렸던 '디아블로2'도 내가 즐기는 게임이다. 롤플레잉 게임 중 가장 인기가 많은 '리니지'는 사실 엄두를 못 낸다.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디아블로2' 역시 그런 롤플레잉 게임의 특성이 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유저들처럼 치밀하게 즐기진 못한다. 온라인 서버에서 아이템을 획득하고, 경험치를 쌓는 플레이는 꿈도 못 꾼다. 대신 싱글 모드에서 아이템을 만들어 착용하는 등 게임 자체의 속성을 즐긴다. 가끔 동료끼리 '디아블로2'를 가지고 내기도 한다.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꼴찌를 한 적은 없다.

요즘은 프로화한 e-스포츠 종목이 많다. 프로게이머로선 한 종목에 전력투구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 그러나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은 끊임없는 두뇌 회전을 요구한다. 그래서 다른 게임을 통해 게임의 트렌드와 특성을 이해하는 것은 필수다. 게다가 주 종목이 아니라면 게임을 통해 스트레스도 풀 수 있다.

나는 올해로 프로게이머 생활 6년째다. 그런데도 다른 종목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는 선수들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게임의 재미를 여러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땀을 흘리는 타 종목의 프로 게이머들은 늘 멋있어 보인다. 잊지 마시라. 스타크래프트 선수 임요환도 그대들의 게임을 보며 많이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임요환 프로게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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