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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가 힘 키운 건 영토 장악 못한 ‘실패국가’들 때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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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호 11면

이슬람국가(IS) 격퇴를 위한 전투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라크 북부에서는 쿠르드군이 IS에 맞서 싸우고 있다. 쿠르드 자치정부의 수도인 아르빌의 총기수리 업체도 호황을 맞고 있다. 사진은 쿠르드군 무기를 수리하는 업체에서 한 직원이 바쁘게 작업하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지난달 21일 북아프리카의 리비아 동부 쿠바 지역에서는 연쇄 폭탄테러가 발생해 45명 이상이 숨졌다. 테러 직후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는 “이번 공격은 리비아와 이집트 공군의 공습에 대한 보복”이라고 밝혔다. 앞서 IS는 이집트인 콥트 기독교도 21명을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리비아 해안에서 참수하기도 했다. 중동 시리아와 이라크에 주 근거지를 둔 IS가 아프리카까지 넘보고 있다. 그중에서도 리비아와 나이지리아는 IS가 손쉽게 활동 반경을 넓힐 수 있는 나라로 꼽힌다.

‘아랍의 봄’ 이후 표류하는 중동

 이 나라들은 하나같이 국가가 자국 영토를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막대한 국제적 지원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2011년 살해된 이후 새로 들어선 리비아 정부는 통제력이 약해 영토를 장악하는 데 실패했다. 리비아는 종파·정파·부족 간 분쟁이 이어져 사분오열된 상태다. 나이지리아 북동부 지역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반군 보코 하람(Boko Haram)이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무법지대다.

 국제정치 학계에서는 이러한 나라들을 ‘실패국가(failed state)’로 정의하며, 국제안보와 개발협력 관점에서 접근한다. 특히 국제 안보적 관점에서 실패국가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실패국가가 테러단체의 ‘요람’이 될 수 있음을 주목한다. 이들 실패국가가 IS라고 하는 강력한 테러 세력의 숙주로 전락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나이지리아, 석유 수출 감소로 위기 증폭
서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는 가장 우려되는 국가다. 미국 금융사인 씨티그룹은 2013년 2월 ‘에너지 2020’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미국이 몇 년 내로 에너지 수출국가로 바뀌면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그리고 서부 아프리카 국가의 원유 수입을 제한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또 “(이들 지역의) 몇몇 나라에서는 자원 판매 수입이 줄어들면서 정치·경제적 개혁 압력이 높아져 실패국가가 될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고서를 작성한 에드워드 모스는 당시 미 N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이지리아의 미래는 꽤 암울하다”며 대놓고 나이지리아의 국가실패 위험성을 거론했다.

 씨티그룹이 보고서를 낸 지 정확히 2년 후 아프리카의 최대 경제대국인 나이지리아는 셰일가스 혁명에 따른 경제적 타격과 함께 보코 하람의 공격으로 설상가상의 상황을 맞고 있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당초 지난달 14일 대선과 총선을 치를 예정이었다. 하지만 안전 문제로 선거를 연기했다. 국가의 주요 행사인 선거를 연기할 정도라면 명백히 실패한 국가의 징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편 IS가 이라크와 시리아의 일부 영토를 장악하고 있는 것과 관련, 헝가리의 국제정치학자인 에린 젠은 흥미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젠은 영토통제 여부를 잣대로 ‘파편화된 국가(fragmented state)’라는 개념을 주장한다. 파편화된 국가란 중앙정부가 통제하지 못하는 영토가 일정 영역에만 제한돼 있는 실패국가를 말한다. 젠의 프레임에 따르면 시리아와 이라크의 영토가 파편화됐고, 이런 상황에서 중앙정부가 통제하지 못하는 일부 영토가 IS의 근거지가 된 것이다. 이러한 프레임은 자국 영토 일부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이라크와 시리아, 두 나라의 국가 실패가 IS 출범에 일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IS 확산 막기 위해 국제사회 공조 필요
그렇다면 왜 실패한 국가가 생기는 것일까. 로버트 로트버그 하버드대 교수는 “(실패한 국가의 씨앗인) 무장 반란이 일어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종족이나 종교, 언어 그리고 다른 집단 간 적대감에 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IS의 주 근거지인 시리아와 이라크는 이러한 조건에 부합하는 국가들이다. 수니파 근본주의 무장 조직인 IS는 시아파가 주축인 이라크와 시리아 정권에 대한 종파적 적대감을 부추겨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국제기구나 구호단체들은 특정 국가의 실패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세 가지 범주에서 접근한다. 국가 권력, 행정서비스, 정통성이 그것이다. 이는 국가가 자국의 영토 안에서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느냐, 행정서비스는 국민들에게 제대로 제공되고 있는가, 그리고 정부는 정통성을 보유하고 있는가라는 것을 살펴보는 기준들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이라크는 국가 권력과 정통성 부문에서 실패한 최악의 실패국가로 지목됐다. 시리아도 정통성 부문에서 실패한 국가로 분류됐다. 우려되는 나이지리아의 상황도 이들 나라와 비슷하다. 나이지리아는 행정서비스 부문은 실패로, 국가 권력 부문은 실패할 위험이 있는 나라로 분류됐다.

 이제 IS를 퇴치하기 위해 미국이 지상군을 투입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가래로 막는 형국이다. 이 대목에서 국제사회는 나이지리아 대선 연기를 그냥 있을 수 있는 일로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다. 나이지리아도 이미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상황은 지났지만, 가래로 막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

보코 하람, 인근 국가서도 테러 자행
보코 하람은 올해 초에도 나이지리아 북동부 바가 지역을 공격해 수천 명을 살해한 것으로 보도됐다. 2009년 이후 보코 하람에 의해 살해된 사람만 1만3000명으로 인명 피해 규모는 이미 전쟁 수준이다. 최근에는 나이지리아뿐 아니라 인근 카메룬·니제르 등에서도 테러를 자행하며 ‘아프리카의 IS’로 세력을 키워 나가고 있다.

 서아프리카 국가들 사이에서는 공동으로 보코 하람에 맞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최근 카메룬 등 서아프리카 국가들이 보코 하람에 맞서 다국적군 등을 구성해 공동 대응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 의장인 존 마하마 가나 대통령은 “나이지리아와 카메룬이 보코 하람과 싸우고 있지만 다국적군이나 지역 군 구성을 고려할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마하마 대통령의 발언처럼 아프리카 국가들뿐 아니라 국제사회가 나이지리아의 국가 실패를 막는 데 힘을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아프리카에 또 하나의 IS가 출현하는 것을 막는 길이다.

박경덕 포스코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 poleeye@pos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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