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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 6범에 총기 소지 허가 … "총 내줄 때 위치 추적 필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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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총기 난사 사건이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단독주택에서 발생해 피의자 전모씨를 포함해 4명이 사망했다. 경찰이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화성=뉴시스]

“이렇게 불안해서야 어떻게 마음을 놓을 수 있겠나. 하루빨리 확실한 총기 관리 대책이 나와야 한다.”

 지난 25일 세종시에 이어 27일 경기도 화성시까지 사흘 새 8명이 사냥용 엽총에 숨지자 “한국도 더 이상 총기 안전국이 아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이날 화성에서 엽총을 난사한 전모(75)씨는 폭력·사기 등 전과 6범임에도 그동안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은 채 엽총을 소지해온 것으로 드러나 민간인 총기 관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장 허술한 총기 관리가 도마에 올랐다. 전씨는 이날 오전 8시22분 화성시 남양파출소를 찾아가 맡겨 뒀던 이탈리아제 엽총 1정을 출고한 뒤 곧바로 범행 현장으로 갔다. 전씨는 이 총을 지난 9일 입고한 뒤 16~26일 다섯 차례나 입출고를 반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민 박모(57·여)씨는 “70대 노인이 수시로 총을 빼가는데 경찰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그렇잖아도 최근 이곳엔 사냥한다며 차에 엽총을 싣고 다니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 주민들이 불안해하던 차였다”고 말했다.

 일선 파출소에 칼을 막는 방검복만 비치돼 있을 뿐 방탄복은 지급돼 있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날 오전 9시34분쯤 112 신고를 받은 이강석(43·경감) 남양파출소장은 4분 뒤 테이저건을 들고 집안으로 들어가려다 전씨가 쏜 총에 맞아 숨졌다. 당시 이 소장은 방탄복이나 방검복을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서둘러 출동하느라 방검복도 챙기지 못했다. 경찰은 “총기사건 신고를 받은 이 소장이 ‘내가 가겠다’고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며 “이 소장이 전씨와 평소 아는 사이여서 대화로 설득하려고 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이 소장을 경정으로 특진시키고 국립현충원에 안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범행 현장 앞에 세워진 전씨의 에쿠스 승용차에서는 6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됐다. 경찰은 유서에 형에 대한 원망과 살해 의지가 적혀 있는 것으로 미뤄 계획된 범행인 것으로 추정했다. 주민들은 “전씨의 형이 택지개발 보상금을 받아 수십억원대 자산가가 됐고, 이에 전씨가 최근 술만 마시면 형을 찾아가 돈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총기 사고가 잇따르자 경찰청은 관련 법 개정을 통해 총기 소지 요건을 보다 엄격히 하고 총기 관리도 강화하는 방안을 내놨다. 우선 폭력 등 형사입건된 전력만 있어도 총기 소지를 불허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총기 입출고도 소지자 주소지 경찰관서와 수렵장 관할 경찰서로 제한할 방침이다. 다음달부터 두 달간 총기 소지자에 대한 전수조사도 실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실효성이 없다”며 회의적인 반응이다.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르려고 마음만 먹으면 막을 길이 없다”며 “일선 경찰서에 심리관을 상주시켜 총기 반출 전 대면검사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총기를 내줄 때는 위치 추적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방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사생활 침해 논란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사회적 공론화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 교수는 “총기 사고는 모방 범죄가 잇따를 가능성이 큰 만큼 하루빨리 근본적인 보완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화성=전익진·윤정민 기자, 채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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