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좋은 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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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말 한마디에 천냥빚을 갚는다」던가. 말에대한 속담이나 격언들을 보면 그모두가 고운말과 진실된말을 높이 사는것들이 많다.
『너거 엄마 집에 있나?저녁먹고 우리집에 좀 오라캐라!』
누가 내 아이를 잡고 이렇게 말할때면 솔직이나는 끔찍하고 암담한 느낌이 든다.학교에서 잘가르치고 집에서 아무리신경을 써도 어디서 이상한 은어나 못된소리를배워 곧잘 써먹는것이 한창 자라는 아이들인데.『어머니 계시니? 저녁 잡수시고 우리집에 좀 오시라고 말씀 드려라」
이런 정도로 말하면 듣는 아이에게 어른으로서귀감이되고 말하는 사람품격 떨어지지 않아 좋을텐데, 참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말이란 골라해야하고 해프지 않아야한다. 말은 진실성이 있어야하며 그한마디 한마디를 책임질수있어야한다. 말은 무례해서는 안된다. 정중해야하며 남에게 해가되지 않아야한다.
며칠전 시장에 갔다가 유달리 불툭한 바구니를 들고 바쁘게 오는데 대여섯살난 계집아이가 쫓아와 까딱 인사를 한다.『아주머니,이것 아주머니 시장바구니에서 떨어진 거예요. 제가 주워왔어요]
예쁘장하게 생긴 아이가 힘에 겨워 쌕쌕거리면서 맑고 또렷한 음성으로 말하고는 연뿌리한개를 두손으로 공손히 전해준다. 흔히 어른이나 아이나 『아줌마,저기 뭐 떨어졌어요』 하고 일러주는 것만으로도 소임을 다한걸로 알만한데,그 아이의 단정한 말씨와 행동거지를 보니 그야말로 그 부모의 교양과 그집의 가풍을 알만하다.
집에서 평소 옳은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는 이런 조그마한 일에도 자연스럽게, 그러나 틀림없이 눈에 띄게 표시가 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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