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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유원지 … 예술을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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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요술의 집
등산로 중턱에 요술집처럼 나타나는 독일 건축가 허만 마이어 노이슈타트의 '리. 볼. 버(Re. Vol. Ver)'. 숲 속 풍경을 또 다른 느낌으로 즐길 수 있는 전망 좋은 쉼터다.

물고기 분수
'물고기의 눈물이 강으로 흐른다'는 시적인 제목을 단 벨기에 작가 호노레 도의 분수. 안양 대홍수 때 산 위에서 굴러 내려온 큰 바위 위에 역동적인 액체의 선을 뿜어내는 분수를 설치해 하천을 아름다운 상상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춤추는 부처
프랑스 작가 질베르 카티가 만든 회전그네 놀이 '춤추는 부처'.

"저 높이 올라간 게 뭐예요?"

주말 나들이 인파로 북적거리던 13일 오후 안양유원지 주차장. 한 등산객이 파수막처럼 솟은 철탑을 가리키며 묻자 삶은 고구마를 팔던 노점상 아주머니가 한마디 거든다. "몰래카메라 아니야?" 담배 한 대 피워 물던 마을버스 기사가 웃는다. "그게 예술작품이래요. 프랑스 사람이 와서 지은 건축물이랍디다. 한 평짜리 방 몇 개를 올렸는데 그 안에서 비디오도 튼대요." "그럼, 비디오방 아니야." "정보센터래요." "우리 안양도 좋아졌어. 이걸 보러 사람들이 이렇게 모이는구먼."

제1회 안양 공공예술 프로젝트가 열리고 있는 안양이 '아트 시티'(예술 도시)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관악산과 삼성산이 만나 일군 계곡과 숲 6만3000여 평으로 이뤄진 안양유원지 곳곳에 건축.조각.그림.디자인.조경이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막걸리 한 사발에 파전 한 조각 먹으며 얼근해지던 유원지 풍경이 미술품을 즐기고 감상하는 현대미술의 실험 마당으로 변했다. 25개국에서 모인 90여 명의 작가가 각기 제 좋은 터를 만나 창조한 작품은 아이들에게는 놀이터가 되고, 지친 도시인에게는 명상의 집이 된다.

안내소에서 나눠 준 노란 지도를 들고 1.4㎞ 계곡을 따라 오르며 작품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자연 속에 살아 숨쉬는 천연 미술관이다. 유원지 들머리부터 눈길을 끄는 미술품이 줄을 선다. 오징어 모양을 한 의자 겸 전망대인 '오징어 정류장'은 이탈리아 디자인 그룹 '엘라스티코'의 익살 넘치는 작품이다.

아메바 모양 창문이 뚫린 흰 건물은 한창 공사 중이다. 포르투갈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로 시자(72)가 아시아에 세우는 첫 설계작 '광장 전시관'이다. 원래 235평짜리 대형 화장실이 지어질 뻔했던 이 자리에 전시관이 들어선 것은 이번 프로젝트가 낳은 화제 중 하나다. 네덜란드의 건축그룹 '엠비알디비(MVRDV)'가 세우는 전망탑, 핀란드의 젊은 여성 건축가 사미 린탈라가 산 중턱에 설계한 '천상의 다락방', 미국 건축가 비토 아콘치가 구상한 주차장 '나무 위의 선형 건물' 모두 앞으로 세계의 건축학도들이 순례하듯 찾아올 안양의 명물로 떠올랐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좋아한 작품은 벨기에 작가 호노레 도의 '물고기의 눈물이 강으로 흐른다'였다. 안양 대홍수 때 산에서 굴러 떨어진 큰 바위 위에 설치한 이 분수는 커다란 물고기 모양으로 보는 이의 상상력을 돋운다. 거울처럼 투명한 알루미늄 원통 미로인 '거울 정원 3'은 봄.여름.가을.겨울 산속 풍광 따라 달라지는 아름다움이 그려지는 덴마크 작가 예베 하인의 작품이다. 그는 아이들을 위해 미끄럼틀로도 쓸 수 있는 '노래하는 벤치'를 덤으로 만들어 최고 인기 작가가 됐다.

예술가 10명이 나름대로 꾸민 '예술가의 정원', 쉬거나 밥을 먹을 수 있는 평상을 숲 속에 펼쳐 놓은 천대광씨의 '은하수', 꽃분홍 색감이 톡톡 튀는 이탈리아 작가 안드레아 브란치의 '소풍 벤치', 독특한 기를 풍기는 이승하씨의 조각 동산 '정령의 숲', 누우면 저절로 잠이 오는 일본 디자인 그룹 '클립'의 '낮잠 데크', 들어서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인도네시아 작가 에코 프라워터의 대나무 집 '안양 사원' 등 숨은그림찾기처럼 숲 속을 헤매며 만나는 미술품은 신기하고 유쾌하다.

'안양 공공예술 프로젝트'의 예술감독을 맡아 1년여 유원지를 제집 마당처럼 드나든 이영철(계원조형예술대 교수)씨는 "안양 시민과 궁합이 맞는 공공예술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았다"고 밝혔다. 그는 "1980년대부터 대중과 만날 수 있는 미술이 무엇일까 고민해 왔는데 이제야 그 길을 찾은 것 같다"고 기뻐했다.

안양=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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