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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처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남편이 아내를 죽인 사건이 일어났다.
아침식사후 머리가 아프고 구토가 나서 『음식에 약을 탄것이아니냐』며 부인과 언쟁을 벌인 끝에 저지른 참사다.
주변사람들은 범인이 심한 의처증을 보여왔으며 그때문에 정신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은바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범행의 원인은 「의처증」이라는 얘기다.
병리학 사전에는 「의처증」이란게 없다. 백과사전에도 그런 항목은 없다. 다만 「의처증」을 설명할수있는 의학용어는 있다.
망상성 의보(Paranoiac delusion)다. 망상성 치매는 중년기에 갑자기 환각과 망상이 심해지는 증세다. 피해망상과 질투심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폭행을 가하거나 피해를 끼친다. 심하면 자살까지한다.
그건 정신분열병의 일종이다. 「망상」이라는 정신작용과 밀착된 증세다.
망상은 병적으로 생긴 잘못된 판단이나 확신이다. 주로 정신분열에 의한 것과 심인성질환 혹은 기질성질환에 의한 것으로 나뉜다.
그러나 의처증은 보통 정신분열병으로 보면 피해망상의 범주에 넣을수 있다. 또 심인성인 조울병으로 보면 심기망상에 포함할 수 있다.
아내를 의심하는 마음자체는 질투망상(delusion of jealousy)이고, 음식에 독을 넣었다는 망상은 피해망상이나 심기망상이다.
의처증은 근거없이 아내를 질투해서 아내가 다른 사람과 애정을 갖고 있다고 망상하는 증세다. 물론 역으로 의부증도 있다.
그러나 그건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질투」일때도 있지만 사랑의 병임엔 틀림없다.
「셰익스퍼어」 4대비극의 하나인 「오델로」에서 주인공 「오델로」는 사랑하는 아내 「데스데모나」를 의심, 질투한 나머지 목졸라 죽인다.
「오델로」의 질투는 물론 공연한 질투망상이 아니다. 「이야고」가 만들어 놓은 악의적인 증거등이 의심과 질투를 촉발한 것이다. 그러나 「오델로」는 결국 「질투망상」의 노예가 되어 아내를 죽이고 자살하는 비극을 저지른다.
「질투」는 그리스신화에서 거인 「팔라스」와 「명부의 강」을 뜻하는 「스틱스」사이에서 태어난 첫아들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나 질투의 화신은 역시 「제우스」의 아내 「헤라」쪽이다.
우주의 주재자인 「제우스」는 또 말못할 바람둥이다. 그때문에 「헤라」는 항상 질투속에서강짜로 세월을 보내고 연적을 혼내곤한다.
어찌 보면 질투는 망상도 있지만 이유가 있을 때도 있다. 많은 해외 파견 근로자의 가정이 파탄에 이르는 사회상도 그걸 입증한다.
해외주재원으로 아프리카 가나에 근무하던 이씨가 의처증세를 일으켜 가정파탄을 가져온 것도 그런 사회상의 영향처럼 보인다. 인심이 황폐하고 불신이 만연한 이 시대의 비극을 보며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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