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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를 바꿔 경쟁력 키우자] 下. 땜질정책 그만하고 시장 살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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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포항에서 화물 운송거부가 이어지던 지난 8일 "부산에서 차량 2천8백여대가 화물운송을 중단하고 비상대기 상태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자 건설교통부 수송물류심의관실은 "부산시 교통국에 확인한 결과 휴일이라 화물차들이 주차 중이나 화물연대의 집단행동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라는 해명자료를 냈다. 물류 주무부서가 사태의 기본동향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셈이다.

정부와 화물연대의 협상과정에서도 갈팡질팡하는 정부의 모습이 자주 나타났다. 지난 2월 말 화물연대가 처음 시위할 때만 해도 건교부는 "이익단체의 무리한 요구"라며 무시하다가 집단행동이 확산되자 결국 경유세 보조금 확대 등 이들의 주장을 거의 수용했다.

그러나 최종찬 건교부 장관은 협상타결 후 "화물차 급증으로 수급균형이 무너진 게 원인"이라며 국회에서 사의를 표명했다. 정부도 물류대란의 근본원인이 다른 데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셈이다.

화물연대 운송거부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지나치게 땜질식이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장 기능을 되살리는 방안이 시급하다"며 정부가 이 일에 나서줄 것을 주문했다.

근본 대책에 무관심한 정부=건교부는 ▶화물차 관련 법규 ▶터미널 등 인프라 등을 담당한다. 그러나 사태가 일단락된 후에도 인원과 조직이 부족해 뾰족한 대응책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손봉균 수송물류심의관은 "전에는 화물운송국장과 물류심의관이 별도로 있었지만 1999년 이후 조직이 통합돼 큰 일이 벌어지면 힘이 부친다"며 "전문가.화주.운송업자 등이 참여하는 화물운송제도선진화추진협의회를 만들어 물류 체계를 개선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건교부 일각에서는 화물차가 등록제로 바뀌면서 화물차가 크게 늘었기 때문에 허가제를 부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물류산업 표준화.정보화를 담당하는 산업자원부도 근본적인 대책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산자부 관계자는 "협상 조건 중 산자부 관할은 경유세 인하 뿐이지만 이것도 엄밀하게 말해 세제를 담당하는 재정경제부와 보조금을 담당하는 건교부 관할"이라고 말했다. 산자부는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화주인 수출업체와 무역협회를 중심으로 물류부문 개선을 위한 방안을 연구할 계획이다.

운수업계에서는 규제 부활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현실 인식이 지나치게 안이하다고 보고 있다.

창원의 운수업체 김모(47)사장은 "단속을 강화해 다단계 알선을 근절하겠다는 것도 구태의연한 대응책"이라며 "화주와 계약도 하지않은 중개업자가 미등기 아파트를 전매하듯 지입차주와 거래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계약서를 첨부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시장기능 살리는 데 나서야=전문가들은 정부가 터미널.도로.화물정보 등 인프라 구축에 전념하는 한편 운수업체 대형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류시장의 기능이 활성화하도록 정부가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대한상의는 조만간 ▶다단계 알선업체 정리 ▶지입제 완전폐지 ▶화주의 화물정보 공개 등을 정부에 건의할 예정이다. 1만2천개가 넘는 운송알선업체를 통합.정리하는 일을 정부가 해줘야 고질적 병폐인 다단계 알선문제가 해결된다는 주장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자회사인 토로스에 물량을 모두 배정하고 포스코는 대한통운 등 5개 운수회사에만 입찰 참가자격을 주는 등 일부 업체에 물량을 몰아주는 관행도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또 화주가 사고나 화물 분실 등 우발사태를 우려해 개별 차주에게 운송을 의뢰하지 않는 문제도 대안이 필요하다.

상의 관계자는 "프랑스처럼 위탁알선업체가 화물운송 정보의 일부를 의무적으로 공개하고 나머지는 직영차나 협력업체에 의뢰하는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강대 경제학과 남성일 교수는 "예측가능한 물류 시스템을 통해 수급을 조절하지 않으면 물류비 상승에 따른 부담을 결국 기업과 국민이 져야할 것"이라며 "인수.합병을 통해 물류업체가 자발적으로 대형화에 나서면 세제혜택이나 금융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형규.강갑생.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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