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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의 마지막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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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 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3김 중에서 DJ(김대중)는 2009년 작고했다. YS(김영삼)는 병세가 무척 깊다. JP만이 건재하다. 비록 휠체어를 타지만 그는 여전히 정확한 기억과 묵직한 언어로 버티고 있다. 그런 그가 오늘 86세 부인을 땅에 묻는다. 지난 4일간 한국인은 역사적인 상가(喪家)를 목격했다.

 상가 풍경은 한편의 현대사 기록영화였다. 1961년 5·16 쿠데타를 이끈 육사 8기 주역들, ‘JP 대통령’을 꿈꾸다 정보부에 끌려간 JP그룹, 80년 JP를 가두었던 5공 신군부, 95년 JP를 쫓아낸 YS 부하들, JP를 조카사위로 맞은 박정희 가문, 그리고 취임 후 세속의 상가에 두 번째로 나타난 ‘고독의 여왕’ 박근혜···. 이런 조문객을 엮은 역사의 나이테는 50년을 넘었다.

 역사의 현장에서 내가 제일 먼저 마주친 건 그러나 권력도, 정치도 아니었다. 인간 JP였다. 64년을 해로(偕老)한 부인을 보내며 89세 남편은 하염없이 흐느꼈다. 박정희 대통령의 사위 한병기씨는 전했다. “마지막 시간, 부인의 병실엔 몇 사람만 있었습니다. JP는 제 손을 잡고 울고 또 울었습니다.”

 JP는 한국전쟁 1년 전 육사 8기로 소위가 됐다. 동기생 1200여 명 가운데 400여 명이 전사했다. JP는 평소 자신을 생잔자(生殘者)라고 표현했다. 동기들은 전투에서 죽었는데 자신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JP다. 그런데 그런 사람도 부인의 주검 앞에선 또 다른 충격을 받는 모양이다.

 JP는 몇몇 조문객에게 말했다. “몸이란 게 그렇게 빨리 식을 줄 몰랐어. 숨이 멎은 지 10분 만에 뺨을 만졌는데 벌써 무척 차더라고. 1시간 후에는 내가 키스를 했어. 그런데 입술이 얼음장 같았어.” 내가 물었다. “마지막 키스를 하신 거군요. 그렇다면 첫 키스는 언제 했습니까.” JP는 주저 없이 말했다. “아 만나기 시작했을 때부터 했지. 결혼하기 전까지 무수히 했지. 속도도 위반했는걸. 내가 미국 보병학교에 갔을 때 이 사람이 편지를 보내는데 꼭 끝에다 빨간 키스 마크(kiss mark)를 찍어요. 나더러 그 위에 키스하라는 거지.”

 염(殮)의 시간이 다가왔다. 시신을 닦고 수의를 입히는 것이다. 딸은 아버지에게 “옷을 입힌 후에 보시라”고 했다. 그런데 JP는 “아니다. 네 어머니 씻기는 걸 내가 다 보겠다”고 했다. “벗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부인을 보면서 JP는 많이 울었다고 한다. JP 상가에서 조문객을 사로잡은 건 64년 부부의 애틋한 감정이다. 평생 2인자 세도를 누렸지만 JP에겐 여성 스캔들이 없었다. 좋은 반려(伴侶)가 얼마나 축복받은 포만(飽滿)인지 그는 보여주었다.

 잠시 다녀가는 인사들을 빼면 상가의 주객은 자민련 인사들이었다. 90년 노태우의 민정당,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은 3당 합당을 단행했다. JP는 약속대로 YS를 밀었고 YS는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집권 2년 만에 YS 세력은 JP를 쫓아냈다. “박정희 유신독재의 잔당”이라는 거였다. JP그룹은 고향 땅 충청도로 갔고 시련 끝에 자민련을 창당했다. 자민련은 95년 지방선거에서 충청을 휩쓸었다. 강원 도지사도 차지했다. 이듬해엔 국회의원을 50명이나 냈다. 상가의 자민련 인사들은 전설 같은 무용담에 빠져들었다.

 사실 자민련 드라마는 JP에게도 신화다. 60~70년대 JP는 1인자 권력에 제대로 맞서질 못했다. 그가 고개를 들라치면 박정희는 내리눌렀다. “다음은 임자 차례인데 왜 서두르냐”는 것이었다. 극심한 탄압을 받아도 JP는 당하고만 있었다. “그러니 평생 2인자”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랬던 JP가 YS를 상대로는 제대로 일을 저지른 것이다. 하지만 전성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DJ와 손잡은 후 JP는 쇠락으로 들어갔다. 50석이 2000년엔 17석, 2004년엔 4석으로 쪼그라들었다. JP는 결국 정계를 떠나야 했다.

 “국민은 호랑이”라는 건 스스로 체험한 것이다. 대의(大義)를 쥐고 목숨을 걸면 호랑이는 화답한다. 그러나 대의를 비켜서 권력의 온실로 가면 호랑이는 입을 벌린다. JP는 5·16과 자민련으로 살았고 DJP로 죽었다. 뒤늦게 DJP를 깼지만 자신은 죽어갔다. 사즉생 생즉사(死<5373>生 生卽死)였다.

 많은 이가 부인을 먼저 보내고 조문객을 맞는다. 그렇게 많은 상배(喪配) 중에서 JP 상가는 참으로 독특했다. 그가 허업(虛業)이라 부른 지나간 권력, 늙은 정객들의 화려한 영웅담, 반려의 죽음에 눈물 흘리는 89세의 노(老) 정객, 그리고 ‘국가가 반려’라는 63세 싱글 여성 대통령···. 늙은 배우 JP가 보여주는 마지막 영화인가.

이제 영화는 끝나고 관객은 자리를 뜨고 있다. 검은 옷의 박근혜도 청와대로 돌아갔다. 4촌 언니가 땅에 묻히는 날, 그는 취임 2주년을 맞았다. 사촌형부의 말이 맞았나. 그동안 호랑이에게 여러 번 물렸다. 그런데 상처를 어루만져줄 이가 없다. 오늘따라 우리 대통령이 왜 이렇게 쓸쓸하게 보이는 것일까.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