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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창고서 잠자던 '안중근 기념비' 다시 세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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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극동 러시아에서 무관심 속에 철거됐던 안중근 의사 기념비가 프리모르스키주(연해주) 우수리스크에 다시 선다. 외교부 관계자는 23일 “우수리스크에 있는 한인 이주 140주년 기념관 앞마당에 올 상반기 중 안중근 의사 기념비를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외교부와 함께 기념비 재설립을 추진 중인 독립기념관 측은 “이르면 4월 중 완공될 예정”이라고 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주립의과대학 앞에 있던 안중근 의사 기념비. 한때 철거됐으나 올 상반기 우수리스크에 다시 세워진다. [사진 독립기념관]

 이 기념비는 원래 블라디보스토크 주립의과대학 앞에 서 있었다. 서울보건신학연구원이 안중근 의사를 기리기 위해 2002년 의과대학 측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뒤 세웠다. 안중근 의사가 1907년 연해주로 망명, 한인사회의 지원을 받아 항일의병부대를 이끈 사실을 알리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10년 뒤인 2012년 말 새로 부임한 의과대 학장이 낡은 기념비를 철거해버렸다. 연해주가 아닌 모스크바 출신의 학장이 안중근 의사나 한인들의 항일 독립운동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념비에는 ‘인류의 행복과 미래/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라고 한글로 새겨져 있고, 러시아어로는 안중근 의사의 이름 정도만 적혀 있을 뿐 독립운동에 대한 내용은 전혀 기록돼 있지 않았다. 민간이 주도해 세우고 관리한 기념비라 정부도 이런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철거 뒤에야 이를 알게 된 보훈처와 독립기념관 등은 곧바로 기념비를 수거해 블라디보스토크 시청의 석재창고에 보관했다. 이어 보수 및 재설립 절차에 착수했다. 원래는 1m 남짓 높이의 기념비만 덩그러니 있었지만 보훈처 예산을 투입해 기념비에 표지석도 새로 만들기로 했다. 안중근 의사의 항일 활동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표지석 문구는 “안중근 의사(1879~1910). 황해도 해주 출신. 1907년 연해주로 망명해 항일의병장으로 활동하던 중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대한민국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한국독립과 동양평화를 구현하기 위해 대한침략의 원흉인 일본 추밀원 의장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함으로써 한국인의 기개를 드높였다. 1910년 3월 26일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로 정해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당초 한인 이주 150년을 맞은 지난해 기념비를 이주 기념관 앞에 다시 세우려고 했지만 혹한이 몰아닥치는 바람에 공사가 연기됐다”며 “한 차례 철거되는 아픔이 있었지만 의거의 의미를 더욱 강조한 튼튼한 기념비를 올해 중 일반에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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