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또 편법 인사 한 청·검, 법치와 민주 말할 자격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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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국민의 선택을 받게 된 요인 중 하나는 ‘원칙을 지키는 신뢰할 수 있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였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이 세종시 관련법 수정안 처리에 반대하면서 내세웠던 명분은 약속과 신뢰였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껄끄러운 관계 속에 ‘여당 내의 야당’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지지층의 박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현 정부 출범 이후 이뤄진 검찰 인사는 박 대통령의 이미지와 공약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청와대와 법무부·검찰이 편법으로 검사들을 주고 받는 것은 볼썽사납기까지 하다. 국민의 시선은 안중에도 없다.

 설 연휴 직전 이뤄진 검찰 인사에서 의원면직처리된 대구 출신의 권정훈 부산지검 형사1부장이 어제 청와대 민정수석실 민정비서관으로 임명된 것이다. 사표를 냈던 평검사 두 명도 청와대 행정관으로 갔다. 더욱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특별감찰반장으로 있었던 검사는 재임용 절차를 거쳐 검찰의 인사와 조직, 예산을 총괄하는 법무부 검찰과에 배치됐다. 도대체 현 정부가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을 지켜줄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지난달 말 유일준 평택지청장이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에 임명됐을 때 지적한 것처럼 현직 검사들의 청와대 파견은 실정법의 허점을 이용한 편법이다. 박 대통령의 공약과도 정면 배치된다. 검찰청법이 “검사는 대통령 비서실에 파견될 수 없다”고 규정하자 ‘사표→파견→신규 임용 형식의 검찰 복귀’라는 꼼수를 쓰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9명, 이명박 정부 22명이었다. 임기 3년차에 접어드는 현 정부는 벌써 14명의 검사가 청와대로 들어갔다. 또 이번 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의 특수수사를 총괄하는 3차장으로 임명된 검사는 우병우 민정수석과 대학 동기이며, 특수1부장검사는 우 수석과 같이 일을 해왔다.

 결국 이달 초 대구·경북(TK) 출신 검찰 고위 간부들이 요직을 독점한 데 이어 이뤄진 이번 인사도 국민에게서 호응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하기 어려운 구조로 이뤄진 검찰 권력은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권력으로 변질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현 정부가 지지율 만회를 위해 검찰 권력을 이용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법치주의를 가장해 권력자의 부당한 지배를 정당화할 우려마저 있는 것이다. 또 이번 인사가 국민의 승인을 받는 데 실패하면 결국 국민에게 법을 무시하는 풍조를 확산시키면서 법치주의의 기반을 흔들어놓을 수도 있다. 그래서 검찰 인사는 법과 원칙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국회는 당장 현직 검사의 청와대 파견을 금지하도록 관련 법부터 개정해야 한다. 검찰도 정치적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청와대의 관여와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