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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에 쓴 『대번영』 … 중국 촹커 열풍에 큰 영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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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사공일 고문과 에드먼드 펠프스 교수의 대담은 그리스와 미국에서 중국과 한국까지 동서양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내달렸다. 펠프스 교수는 82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그는 당대 최고의 혁신 전도사다. 혁신이 경제 번영의 열쇠라는 신념이 대담 내내 확인됐다. 펠프스 교수는 유럽이 금융위기 이후 침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혁신 부족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영국에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충분한 혁신이 일어나지 못하고 있고 독일은 19세기 말 철혈재상 비스마르크 때와 같은 왕성한 혁신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이 유럽에서 혁신의 싹을 자른 것일까. 펠프스는 전 유럽에 퍼져 있는 ‘코퍼러티즘(corporatism·조합주의)’을 주범으로 지목한다. 코퍼러티즘은 국가가 경영단체나 노동조합 등 여러 사회집단과 협조체제를 구축해 경쟁을 제한하고 고용과 성장이라는 국민 경제의 목표를 추구한다. 1970년대 후반 북유럽의 노사정 협력체제가 성공하면서 주목받은 모델이다. 그러나 코퍼러티즘은 장기화하고 만연하면서 경제의 역동성을 고사시킨다는 것이 펠프스의 분석이다. 그가 지적하는 코퍼러티즘의 폐해는 간단치 않다. 경쟁력이 떨어진 좀비기업이 연명하고 정부는 재정지출이 늘어나면서 점점 비대해진다. 부의 불평등도 심화한다. 이익단체와 기득권 세력이 정부 정책을 주물러 자신들의 부와 이권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창의와 책임을 북돋우기보다 집단과 정부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어디 유럽뿐일까.

미국에서도 60년대 후반 이래 혁신이 감소하기 시작했고 코퍼러티즘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 펠프스의 주장이다. 그는 보통 사람들의 혁신이야말로 경제 부흥의 원동력이라는 내용을 담은 저서 『대번영(Mass Flourishing)』을 2013년 출간했다. 그의 나이 80세 때다. 그의 이론은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에 영향을 미쳐 촹커(創客·혁신 창업자) 열풍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알려진다.

 펠프스는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사이엔 역(逆)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필립스 곡선을 뒤집은 자연실업률 이론으로 2006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통화정책이 장기실업률을 바꿀 수 없다는 이 이론은 각국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 대신 물가 안정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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