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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별 볼일 있는 날] 현빈도 제쳤다 … 소름 돋는 7중인격, 지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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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MBC ‘킬미 힐미’에서 다중인격을 연기하는 지성. 배경사진은 드라마 화면 캡처. [사진 전소윤(STUDIO 706)]

평범했던 배우가 어느 순간 눈부시게 성장한 것을 확인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못하는 연기는 아니지만 명연이라 상찬하기엔 뭔가 부족했던 이가 어느날 능수능란하게 자기 캐릭터를 갖고 노는 것을 보는 즐거움. 지금 MBC ‘킬미 힐미’의 팔색조 다중인격 연기로 주목받는 지성(38)이 딱 그런 경우다.

 인터넷에는 “교과서 같은 연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놀랍다” “유부남 배우에게 이렇게 빠질 줄이야”라는 팬들의 찬사가 이어진다. 가히 지성의 재발견이다. 비슷한 소재에 초특급 스타 현빈을 내세운 동시간대 SBS ‘하이드 지킬, 나’를 가뿐히 물리쳤다.

 드라마에서 지성은 해리성 인격장애를 앓으며 7개의 인격을 오간다. 국내 드라마에서는 시도된 적 없는 캐릭터인 데다, 그의 실제 나이와도 편차가 크다. 중심인물인 재벌 3세 차도현과 신세기는 20대,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페리박은 40대, 쌍둥이 남매 요섭과 요나는 10대 고등학생이다. 여장과 망가짐을 불사하며 이들을 제각각 살아 숨쉬는 캐릭터로 그려냈을 뿐 아니라, 단순히 ‘7색 원맨쇼’를 지나 다중인격이란 비현실적 설정을 공감가게 했다. 극과 극인 차도현과 신세기를 오가는 연기도 일품이다. 스모키 화장이나 헤어, 의상뿐 아니라 눈빛, 표정, 말투만으로 전혀 다른 두 사람을 동시에 연기해냈다. 무거운 극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코믹한 양념연기도 돋보였다. 물론 여기에는 ‘비밀’에 이어 또 한번 환상적 파트너십을 보여준 황정음이 있었다.

 그의 데뷔작은 1999년 SBS ‘카이스트’다. 데뷔 초에는 여의도에서 노숙을 하고, MBC 녹화장을 구경하며 연기를 배우고, 제작사를 찾아가 직접 배역을 따내는 등 ‘고생담’도 많았다. 이후 성실하고 진지한 이미지로 정평 났고 ‘뉴 하트’ ‘보스를 지켜라’ ‘로열패밀리’ 등의 안정적 주연으로 자리 잡았다. 결정적 한 방이 부족했던 그가 새삼 주목받게 된 것은 2013년 황정음과 처음 호흡을 맞춘 멜로 ‘비밀’. 때론 진폭이 크고, 때론 미묘한 감정변화를 섬세하게 그려 뻔한 재벌 캐릭터를 뻔하지 않게 소화해냈다. 멋진 척, 예쁜 척, 연기를 잘하는 척 하지 않고 상대를 위해 자신을 누르는 진솔한 연기가 지성·황정음 콤비의 힘이다.

 ‘비밀’의 재벌 2세 조민혁은 ‘킬미 힐미’의 신세기와 닮은 구석이 많다. 센 척, 악한 척 하지만 사실은 여리고 상처투성이다. 조민혁이 집착남에서 순정남으로 변해가듯, 신세기 역시 악마에서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아이로 바뀌어 간다. 그 변화를 살리는 연기의 디테일이 포인트다. 가령 인터넷에 떠도는 ‘지성 매너손’이란 영상을 보면, 신세기가 오리진(황정음)을 강제로 차에 태울 때 오리진의 머리에 손을 얹어 차문에 부딪히지 않게 한다. ‘보스를 지켜라’ ‘비밀’에서도 똑같이 나왔던 장면이다. 거칠지만 상대를 배려하는 남자를 표현하는, 지성표 디테일 연기다.

 2013년 7년간 사귄 탤런트 이보영과 결혼한 지성은 조만간 아이 아빠가 된다. 이보영은 SBS ‘힐링캠프’에서 “진지하지만 지루하고 재미없는 사람. 매사 FM스타일이어서 처음에는 별로였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튀지 않고 차곡차곡 밟아온 것이 오늘 그의 자산이 됐음은 틀림없다. 페이스북 드라마비평팀 ‘드라마의 모든것’ 멤버들도 ‘철저한 캐릭터 연구와 노력, 성실함으로 승부한 결과’라는 데 입을 모았다. “지금껏 다져온 연기의 정점”(김지연 PD), “뒤늦게 터진 로코(로맨틱 코미디) 복권”(이지창 작가), “연출의 아쉬움을 채우는 연기”(지혜원 평론가), “몇 장면은 한국드라마의 명장면으로 남을 것”(홍석경 서울대 교수)이란 평을 내놨다.

양성희 문화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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