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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정연한 화술에 이끌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다음 글은 중앙일보가 주최한 제10회「중앙일보독서감상문모집」의 대학알반부에서 최우수작으로 뽑힌 한송천씨의 글이다.
2백자원고지 18장의 분량을 지면사정삼 8장으로 요약했다.
대학·일반부 한송천<서울 동작구 동작동 우일연립 105호>
이청준의 소설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아뜩함」이라고 할수있을 것 같다.좀더 부연하면그것갑 감작스럽게 닥쳐오는 비혈 같은 아뜩함은 아니고, 조리 정연한 화술에 이끌려가서
마침내 당하고마는 열병같은 아뜩함이다.
그것은 작은 호기심으로부터 시작한다. 호들감스럽지 않고 은근히 시작하는 거기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이를테면 내좀 별난 이야기를 해보이겠다는 투에서 풍기는 매력이 바로 그
것이다.
이러한 작가적 특징의 견본으로서 작품 『줄』 은 좋은 예가 될 수 있겠다.
『여봐』 『...』 『여봐,자?』『...』 하는 시작이 벌써 묘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어서 조금은 별스러운듯 하면서도, 차분한 어조로 내력이 얘기될 때 독자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작가에 대한 신뢰감을 견지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소설이 가진 감동력의 심부에는 구성의 문제보다 훨씬 근본적인 이유가 도사리고 있다. 아무리 무감한 독자라도 읽다가 가슴을 치지 않을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의 냉
혹함 때문이다.『과녁』 『가면의 꿈』 같은 작품의 이야기 전개에서 그것은 쉽게 확인된다. 하지만 그이유는 분명히 이야기의 표층구조가 갖는 충격성에 기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의 작품세계를 형성하는 중심범주로 소시민적 일상의 단면과 범상치 않은 비일상인의세계, 특히 장인들의 세계가 자주 등장한다. 작품『과녁』 은 그러한 두 세계가 부딪쳐서 이
룩해낸 좋은 예라고 할것이다.
젊은 검사 석주호-성공한 소시민이라고 할수있는 그는 지방 유지들과의 권태로운 어울림이 중심을 이루는 일상사 속에서 탈피하고자 활쏘기를 배운다.
그를 가르쳐주는 활터 북호정의 궁사노인은 그러나 그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를테면 장인인 것이며, 그러한 두사람의 삶의 차이는 점차 심리적 갈등으로 고조 되
다가, 마침내 노인의 양자인 고전동 소년이 아직 미숙함에도 불구하고 자만심에 잔뜩 충동질당한 석주호의 화살을 맞고 쓰러지게 됨으로써 파국을 맞는다.
이러한 종국은 결 국 두세계가 결걸코 화합될 수 없는 것임을 암시하면서, 말의 장인으로서의 소설가 작업 또한 일상과의 비극적 절연속에서만 수행되는 것임을 작가 스스로 확
인하는 의미라고 하겠다.
그렇게 볼때, 작품 『가면의꿈』 에서의 명식의 죽음 또한 작가의식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는 것으로 파악될 수 있다.
이른바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성공의 전형으로 표상될 수 있는 인물 명식이 우스꽝스런 가면놀음 끝에 자살에 이르고 만다는 이야기는 작가의식의 한 귀퉁이에서 쉽게 제
거되지 않고 남아있는 소시민적 출세의식의 어떤거세의지로 전달돼 오는 것이다.
필자로서 이청준의 문학적전개가 탄탄할 수 있었던 이유를 추정한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끈질긴 문학반성의 성실성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그의 소설구조가 다른 어떤 양식보다도 튼튼한 격자소설의 양식으로 확립된 까닭이 바로 거기에 놓여있음은 잘 알라진 사실이거니와 이 작품집 후기에 상당하는글에서도 확인되
듯이 『왜 쓰는가』 의 물음에 대한 그의 솔직담백한 답변은 이제 문학의 길을 준비하는 후배학도에겐 가장 의미심장하고 미더운 증언이 되어주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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