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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與羊謨肉<여양모육>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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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호 27면

며칠 후면 음력으로 을미년(乙未年) 양의 해다. 한자 양(羊)과 관련된 성어(成語)를 살펴보니 희생양(犧牲羊)이란 말이 주는 이미지처럼 성어 속의 한자 양은 그 쓰임새가 억울하게 이용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양두구육(羊頭狗肉)이다. 양의 머리를 내걸고 실제론 개고기를 판다는 뜻으로 겉과 속이 다른 속임수를 꼬집는 말이다. 양질호피(羊質虎皮)도 비슷한 어감을 준다. 양의 몸에 호랑이 가죽을 걸친다는 뜻으로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빈약한 경우다. 한(漢)나라 때 양웅(揚雄)이 지은 『법언(法言)』에 나온다. ‘양은 그 몸에 호랑이 가죽을 씌어 놓아도 풀을 보면 좋아라 뜯어 먹고 승냥이를 만나면 두려워 떨며 자신이 호랑이 가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羊質而虎皮 見草而說 見豺而戰 忘其皮之虎矣)’. 양이 호랑이 가죽을 쓰고 있어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내적으론 그에 걸맞은 실력을 갖추지 못했음을 일컫는 이야기다. 우리 속담의 ‘빛 좋은 개살구’라 할까. 본질이 바뀌지 않는 한 변화가 없음을 일깨워주는 말이다.

양입호군(羊入虎群)도 양에게 제 실력을 알라는 외침이다. 아무리 용감한 양이라도 호랑이 무리 속으로 들어가서는 살 수 없다. 만용을 부리지 말라는 것이다. 진정한 용기란 정작 용기를 내야 할 때 내는 것임을 일러준다. 다기망양(多岐亡羊)은 길이 여러 갈래로 갈려 있어 양을 잃는다는 의미로, 학문의 길 또한 많아 진리를 찾기 어려움을 가리키는 말이다. 세세한 것을 따지다 근본을 놓치는 망양지탄(亡羊之歎)의 우(愚)를 범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그보다는 양을 잃고 나서라도 우리를 고치는 망양보뢰(亡羊補牢)의 정신이 더 필요할 듯하다.

최근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를 외친다. 실현 가능성에 논란이 많다. 여양모육(與羊謨肉)이란 말이 떠오른다. 양에게 양고기를 내놓으라고 꾄다는 뜻으로 근본적으로 이룰 수 없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국민에게 더 많은 복지를 주기 위해선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하고 이 재원은 결국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일 아닌가. ‘복지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이 설사 양장구곡(羊腸九曲)처럼 꼬불꼬불하고 험하기 이를 데 없어도 국민과의 진정한 대화를 통해 동의를 얻는 길이 최선이 아닐까 싶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scyo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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