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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외교사절 영전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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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버마 아웅산 국립묘지에서 순사한 17위의 영령들에 대한합동장례식이 13일 여의도 광장에서 엄수되었다. 유족들의 오열과 온 국민의 비통과 분노의 함성 속에서 위령제가 거행된 뒤 고인들의 유해는 동작동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거듭 온국민과 함께 옷깃을 여미고 순직자들의 명복을 빈다. 아울러 졸지에 집안의 기둥을 잃은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뜻을 전한다.
북괴의 테러로 희생된 분들은 너무도 아까운 이나라의 동량들이었다. 흔히 사람이 죽으면 고인의 허물을 덮어 두고 좋은 점만을 기리는게 미덕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망자에 대한 그와 같은 허사를 늘어놓고 있는게 아니다.
서석준 이범석 김동휘 서상철 함병춘 이기욱 김재익 하동선…. 이들 모두가 실력으로나 공복으로서의 자세에서 하나같이 훌륭한 준재들이었음을 우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되새기고 있다.
제5공화국 출범을 전후해서 혼미를 거듭하던 이나라 경제를 안정의 반석위에 올려놓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이들은 바로 이들 연부력강한 40대의 엘리트들이었다.
이들이 세우고 또 펼친 이나라경제의 미래싱을 위해 이나라의 최대 국정지표이기도한「선진단국의 창조」를 위해 개인적인 생활을 버리다시피하면서 일에 몰두해왔다는것은 결코 단순한 덕담이 아니다.
국가의 발전에 몸을 던진다는 헌신적인 이들의 자세는 두고 두고 다른 공직자들의 귀감이 될것은 의심할바 없다.
공직에 있던 분들의 손실 못지않게안타까운것은 한 사진기자의 죽음이다. 이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국민에게 신속히 정확히 알리는 것은신문기자의 의무인 것이다.
고 이중현기자는 맡겨진 그책무를 다하기 위해 도열한 공식수행원 맨앞에서 사진을 찍다 참변을 당했다. 자기의 직분을 다하다 목숨을 바친 사람으로서 우리는 영원히 그를기억할것이다.
이나라의 장래를 위해 하나처럼 아깝고 귀중한 사람들이기에 그들을 보내는 우리의 슬픔은 한결 크고 그들을 죽음에 몰아넣은 폭력에 대한 참을수 없는 분노를 느끼는게 아니겠는가.
참사가 났을때 일을 저지른 자들이 누구라는것을 모르는 사람은 적어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단 한명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그 확신은 조금도 빗나가지 않았다. 인류역사상 그유례를 찾아볼수 없는 집단암살을 자행한자들이 북괴라는 사실은 이제 움직일수 없는 사실로 만천하에 밝혀져가고 있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동족에 대한 저들의 잔인무도한 도발행위라는 점에서 또 하나의 6· 25라고 할수 있다.
우리가 오늘 17위의 영령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것은 고인들의 너무도 애석한 죽음이 플퍼서기도 하지만, 6·25로부터 33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동족끼리 극단적인 대지를 해야하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도 한스럽기 때문인것이다.
당장이라도 그들을 응징하고 싶은게우리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 폭력을 쓰는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우리는 안다.
우리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을 성취할것을 바라기 때문에 끈기를 갖고 대화의 문을 두드려 왔다.
그러나 날로 벌어지는 국력의 차이에 초조해진 북괴는 평화통일의 호소에 귀를 막은채 우리의 발전과 성장을 방해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아왔다.
엄청난 민족자해 행위를 저질러놓고무슨 큰 일이나 해낸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소식에 우리는 분노보다는 이들도 인간인가 아연해질 뿐이다.
이제 위정자들이나 국민들이 할 일은 두말할 나위 없이 그들이 못다한 뜻을 펴주는 일이다. 고인들이 바란것은 오직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일이었다.
국력이란 비단 군사력이 강하고 경제가 튼튼하다는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 모두가 마음 편하게 자기의 직분에 충실할수 있는 모든 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부강의 기틀이 다져진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유족들이나 국민들의 애통은 필설로 다 할수 없으나 그러고만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영령들은 국립묘지 국가유공자 묘역에 묻혀 길이 국민들의 추모와 존경을 받을 것이다.
생시에 국가와 민족을 위해 노심초사하던 피곤한 육신을 누이고 고이 잠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영혼은 앞으로도 우리의 안위와 발전을 수호해 줄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 슬픔과 통한을 절어두고 굳건히 일어서 더욱 강하고 탄탄한 우리의 앞길을 다져나가도록 결의를 새로이 해야할 때다. 그러는 것이 고인들의 희생에 보답하고 고인들의 유지를 따르고 잇는 길임을 명심해야 할것이다.
비탄과 울분은 감정의 문제이다. 냉철한 이성과 지혜로 이 어려운 고비를 전화위복의 일대전기로 방향을 돌려잡는것이 우리정부와 국민에게 부여된 역사적 사명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번 사건이 일어난 근본 원인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 나가는것이 과연 우리 민족과역사에 보탬이 될것인가를 정부는 정부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각자의 위치에서 성찰해야한다.
우리민족은 국난과 시련으로 얼룩진 역사를 살아왔다. 그러나 그 때마다 단결된 힘과 슬기로 이를 극복하면서 단일 민족으로서의 유구한 역사를 지켜온 민족임을 자부한다. 이번의 비극 역시 우리민족에게 찾아든 큰시련의 하나이다. 그렇다고 낙담이나 좌절이 있을수 없으며 국민 모두가 너나 없이 서로의 슬픔과 통분을 어루만지고 위로하며 보다 밝은 내일을 건설하는데 힘과 지혜를 모아야겠다.
위정자와 정부·국민이 모두 자기위치에서 자신의 직분과 소명을 성찰하고 용기와 지혜를 한껏 모아 이불행을 딛고 일어서는 일만이 고인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임을 다시 한번 명심해야겠다.
순국영령을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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