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집 1채 은퇴자 ‘건보료 폭탄’ 그대로 … 개선안도 정답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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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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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선임기자

“10년 동안 건강보험 개선책이 나온다고 해서 참고 기다렸어요. 고소득 피부양자는 건보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데 지역가입자는 소득이 있든 없든 재산에, 자동차에 보험료를 매기고 평가소득에서 또 매깁니다. 어떻게 살라고 하는 건지….”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강동한씨는 최근 보건복지부의 정책 혼선 때문에 건보료 개혁이 지체되자 복지부 게시판에 이렇게 하소연했다. 그는 “정부의 행태가 국민의 삶과 거리가 멀고 건보료 개선은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고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현재 새누리당과 복지부는 이러한 비판 여론에 직면해 개선안을 올 상반기에 재추진키로 했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단장 이규식 연세대 명예교수)이 제시한 개선 방안을 기초로 삼아서다. 그렇다면 기획단의 방안이 시행된다면 그의 바람처럼 재산 건보료 부담이 줄어들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기획단의 방안이 정답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재산 건보료 개혁에는 커다란 한계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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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 건보료의 핵심 불만은 두 가지다. 연 소득이 500만원이 안 되는 저소득층의 성별·연령·재산·자동차를 따져 평가소득을 매기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재산 건보료다. 기획단은 평가소득은 폐지하기로 했으나 재산 건보료는 과표에서 1100만원을 빼고 과표 등급을 50등급에서 60등급으로 조정하는 것으로 갈음했다. 또 5억3600만원이 넘는 재산에 대해서는 건보료를 올리는 안을 내놨다. 이 안대로 하면 재산이 적은 일부 저소득층이나 세입자는 혜택을 본다. 재산이 1000만원이 안 되는 226만 가구는 재산 건보료(월 3900~7830원)가 없어진다. 전세 3600만원이 안 되는 세입자도 전세 건보료가 1만1750원(3600만원 전세 기준)에서 0이 되거나 7830원으로 줄어든다. 전세금이 3699만원이던 송파 세 모녀도 이 비슷한 혜택을 보게 된다. 복지부 이동욱 건강보험국장은 “기획단 안을 시행한다면 대도시의 단독주택이나 다세대주택에 세 사는 저소득층의 부담이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재산 건보료 공제액이 1100만원에 불과해 혜택을 보는 저소득층이 얼마 안 되고 부담 경감액도 적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산 건보료 과표는 50등급으로 돼 있다. 가령 30등급의 경우 3억4900만~3억8800만원인데 1100만원을 공제해봤자 등급이 내려가지 않거나 내려가더라도 한 등급만 내려간다. 이 경우 4450원(3.4%)밖에 줄지 않는다. 은퇴 후 아파트 한 채 갖고 있는 베이비부머(1955~63년생)는 거의 혜택을 못 본다. 이렇게 되면 은퇴했지만 수입이 적어 계속 노동시장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반퇴(半退) 계층이 ‘건보료 폭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2013년 기준으로 61만2000명이 은퇴 후 지역건보 가입자가 되면서 건보료가 직장 시절의 2.2배로 올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부원장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를 정할 때 재산을 5400만원(대도시 기준)을 공제하는 데 최소한 이 정도는 공제해야 재산 건보료의 모순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1100만원을 공제하면 건보료 수입이 연간 1800억원, 5400만원을 공제하면 1조원가량 줄어든다.

 재산 건보료에 대한 또 다른 불만은 부채를 빼주지 않는다는 점인데 기획단은 이걸 반영하지 않았다. 조재국 동양대 보건의료행정학과 교수는 “은퇴자는 현금이 별로 없는 데다 집을 살 때 대출받거나 집 담보로 돈을 빌려 자녀 결혼 자금을 댄다”며 “융자가 달리지 않은 아파트가 거의 없기 때문에 최소한 대출금은 빼고 건보료를 매겨야 한다”고 말했다. 재산 건보료를 내는 602만 가구 중 전·월세 건보료 대상자(254만 가구)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데도 한계가 있을 전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건보공단 관계자는 “대도시의 경우 전세 1억원도 저소득층에 해당한다. 이들까지 혜택을 넓히려면 재산 공제액을 1억원까지 올려야 한다”고 말한다.

 기획단의 방안은 재산이 5억3600만원이 넘는 가구의 건보료를 올렸는데 이것도 논란거리다. 보사연 신 부원장은 “재산 건보료를 줄이거나 장기적으로 없애고 소득에만 물린다는 개혁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단장을 맡았던 이규식 교수는 “재산 건보료를 크게 손대면 줄어드는 수입을 조달할 방법이 없어 재산 과표 등급을 세분화한 것 외는 별로 손대지 않았다”며 “저소득층 부담 경감을 위해 평가소득 제도 폐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했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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