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2) 제80화 한일회담(31)-재일동포 처우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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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재일동포의 국적변동이나 영주권부여 다음으로 문제가 된 것은 이들에 대한 처우문제였다.
일본측은 대일평화조약 발효 이후에는 재일한인에 대해서도 일반 외국인과 동일한 대우를 하는게 당연하다는 주장을 해왔다.
그리고 한일간에 통상항해조약이 체결되면 한국인에 대해서는 최혜국민대우를 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최혜국민대우 운운은 장차 양국간에 국교가 수립된 연후에 할 얘기이고 지금의 재일한인 처우문제와는 직접상관이 없는 얘기라고 반박했다.
또 종전전부터 일본에 사는 한국인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일본이 그동안 행해온 내국인대우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의 재일한인은 일본의 식민지배아래서 가지고 있던 참정권만 정지되었을 뿐 다른 분야에서는 아직도 형식상 일본국민 같은 대우를 받고있었다.
이에대해 일본측은「재일한인을 한일통상조약에 의거하지 않고 장래에도 영구하게 내국민과 같은 대우를 하라는 것은 일본국내에「2종의 외국인」을 인정하는 것이며, 국제법상 유례가 없는 일이므로 일본정부로서는 도저히 승인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다만 일본측은『예컨대 광업권 같이 일반외국인에 금지돼있으나 일부 재일한인이 향유하는 기득권은 그 사람이 일본에 재류하는 한 인정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상속이나 일본사람이 아닌 타국인에 양도될 경우에는 문제가 달라진다고 토를 달았다.
따라서 재일한인들이 완전한 일인의 권리를 끝까지 누리려 한다면 귀화하라는 배짱이었다.
원래 대일평화조약이 발효돼도 조약12조에 의해 최하 4년간은 최혜국대우 내지는 내국인대우를 하게 되어있다.
일본측은 일본이 외국인에 대해 금지하고 있는 공무원·변호사·공증인·화약제조·일본항공기 및 선박소유·은행업·회계사 등의 업종에 종사하는 한국사람이 태무한 실정인 만큼 재일 한인들이 대우문제로 피해를 볼 일은 없을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재일한인의 법적 지위문제를 다루는 우리의 기본입장과 속마음은 우리 교포들이 어떻게든지 일제36년의 피해를 보상받아야한다는 것이었지만 장래에도 영구히「내국인 대우」를 하라는 것은 미상불 다소 무리한 감이 없지 않았다.
다시말해 재일동포들이 일본에 눌러 살면서 한국국적을 갖고 귀화하지 않는한 그 사람은 분명히 한국사람이고 일본측에서 보면 외국인이 분명한데 일본인 대우를 항구적으로 하라는 것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모자랐다.
그러나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장차 재일동포들에 대한 일본사회의 박해가 뒤따를 것은 뻔했다.
나는 생각 끝에 우선 현재 일본사회에서 그래도 기반을 굳힌 소수의 교포들의 현실적 권익보호부터 강조했다.
일반외국인에게는 금지된 권리라도 재일동포들은 적어도 10년 혹은 30년 정도의 기간에 걸쳐 특수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국제법 관례에도 없는 것이 아니어서 가령 외국인의 토지소유에 대해 새로운 법으로 제한을 가할 경우 보통 5∼10년은 예외적으로 소유를 용인하는 터였다.
결국 이 문제는 위원회가 당장 어떤 결론을 내지 말고 장차 한일양국간의 국교정상화이후 다룰 문제로 남겨두기로 하고 위원회에서 나온 양쪽의견을 다같이 보고서에 올리기로 했다.
다음으로 재일동포 중 한국귀국자의 재산반입문제가 거론됐다.
일본측은 여기서도 일반외국인의 국제관례에 따라「일본수출무역 관리령」에 의해 △동산은 중량4천파운드 이내 △현금은 일화 10만엔 이내로 제한하겠다고 주장했다.
이에대해 우리측은 △귀환자의 재산반출은 그 수량이나 종류에 하등의 제한을 가해서는 안되며 과세도 하지 말되 △재산반출 명목으로 밀무역을 행하거나 아편·화약 등 금제품을 운반하는 경우에 한해 제재를 가할 것을 주장했다.
여기에 대해선 일본측이 재한일인들의 일본내 재산반입을 바터조건으로 내세웠다가 우리가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바람에 한때 큰 논란이 일었다.
우리가『한국내 일본재산은 종전과 함께 한국정부에 완전 귀속되었으니 더이상 거론도 하지 말라』고 하자 일본측은 잔뜩 화가 나『그렇다면 우리도 재일한인의 재산반출을 하나도 들어줄 수 없다』고 나왔다.
이 때문에 회의장분위기가 험악해져 상호간에 격렬한 비난과 고성이 오갔지만 결국은 일본측이 한발 물러서 우리주장이 대부분 관철되긴 했으나 이는 먼 훗날의 얘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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