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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침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씨가 얼마전 자동자사고로 부상했었는데 자동차보험회사에서 그에게 일용노동자의 임금에 준해서 손해배상을 해주겠다고 했다한다.
자동차보험회사의 변명인즉 신체상해를 입은 피해자의 장래수입상실액은 그 불법행위(교통사고)당시에 그 피해자가 종사하고 있었던 업무로부터 수익되는 액을 기준으로해 손해액을 산정하는데 당시 작가 김성동씨는 별반 작품을 쓰지않고 침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딴은 그런것 같다. 그러나 작가 사인을 포함한 예술인의 침묵은(작품활동을 쉬고있는) 그냥 「아무것도 않는 것」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작가의 침묵은 어떤 완성의 경지는 물론 아니다. 다만 무언가의 잉태이며 과정이며 출산을 위한 고독한 자기싸움이다. 쉬고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며 명품을 내기 위해서는 고독한 침묵은 더욱 가열한 것이어야하며 마치 태풍이 오기전의 고요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작가들은 한편의 작품이 익을 때까지 고통을 참으며 오랜 회임기간을 갖는다.
대법원판례는 「장래 수입이 증가될 객관적 특별사정을 입증하면」 그에 따라서 손해액을 산정할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의식수준으로 법원이 「침묵하고 있는 작가의 장래수입이 증가될 객관적 사정」을 인정할수 있을까? 이 문제는 우선 그 사회가 작가 예술인을 얼마나 외경의 마음으로 보느냐와 그들의 창작과정의 속성을 얼마나 이해할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현재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만한 판례는 하나도 없는 것같다. 문인 예술인들은 이러한 일을 속된 일이라고 덮어둘 것이 아니라 한번쯤은 법정에서 논해 보아야한다.
법조인은 물론 영·미·불·이 등 문화예술인의 지위가 일반인의 의식수준에서도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나라들의 판례와 학설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참여해 이론도 발전시키고 판례도 산출해야 될것이다. 그럴 경우 법조인 법학자는 예술인의 속성과 예술의 경제적 평가가치뿐만 아니라 그 작품에 대한 예술인 자신의 애착과 자만감까지도 섬세하게 아끼고 사랑으로 이해할수 있는 감성을 갖추어야한다.
우리시대의 의미이며 문화의 핵을 창조하는 사람을 제대로 대우하지 못하는 사회에 살아간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김동현 <시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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