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통계의 중추 - 센서스] 상. 정확한 조사가 정책 질 높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1일 2005 인구주택총조사가 시작됐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서 한 가족이 조사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5년에 한 번씩 실시되는 이번 조사는 15일까지 계속된다. [연합뉴스]

인구주택총조사(센서스)는 '국가통계의 원천'이라고 불린다. 경제.교육.복지.교통 등 주요 정책을 만들 때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센서스는 '믿을 만하지만 중요한 내용이 일부 빠져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보완할 내용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2005 센서스(11월 1 ~ 15일)에 맞춰 미국.일본.싱가포르의 해외취재를 통해 이 조사가 왜 중요하고, 개선할 점은 무엇인지 등을 3회 시리즈로 연재한다.

인터넷으로 답변하려면☞ www.census.go.kr

인구주택총조사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문화와 환경을 고려해 정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조사원이 집을 찾아가 조사하는 면접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집에 없는 사람을 위해 조사원이 설문지를 전달하고 나중에 찾아가는 '자기 기입 방식'도 일부 병행했다. 올해엔 처음으로 인터넷 조사 방식을 도입했다. 일본은 자기 기입 방식을 주로 사용했다. 설문지를 스스로 작성해 밀봉한 뒤 조사원에게 건넨다.

미국은 우편으로 설문지를 보내면 가구에서 작성해 우편으로 다시 보내는 우편 방식을 사용한다. 응답하지 않은 가구는 조사원이 직접 찾아가 조사한다. 미국이 채택한 우편 방식은 비용이 덜 들지만 응답률이 낮고(2000년 67%) 정확히 답했는지 신뢰성을 검증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한국이 채택한 조사원 면접 방식은 정해진 질문을 비교적 정확하게 조사할 수 있다. 응답률도 98%로 높다. 그러나 조사원 채용에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특히 조사원이 묻고 주민이 답하기 때문에 소득.결혼 관계.장애 여부 등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답변을 피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소득.장애 등의 조사가 제대로 안 된 이유다. 1960년대 한국의 인구주택총조사를 설계하고 지휘했던 하와이 동서문화센터 조이제 박사는 "당시는 글을 모르는 사람도 많아 조사원 면접 방식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소득·다주택 등 경제정책 기초 항목 빠져

지난달 12~27일 산업자원부의 과장.직원 등 85명은 요금을 못 내 전기가 끊길 위기에 처한 170여 차상위계층 가구를 일일이 찾았다. 차상위계층이란 생활보호대상자(극빈자) 바로 위 계층으로 월 소득이 4인 가족 최저생계비인 136만원보다 기껏해야 20% 많은 가구를 말한다. 이들은 극빈자가 아니어서 그동안 복지혜택을 받지 못했다. 정부는 이들을 지원할 계획이지만 문제는 그 수를 모른다는 것이다. 적게는 100만 명에서 많게는 300만 명 정도로 추정할 뿐이다. 산자부 과장들은 결국 170개 가구를 찾아 소득실태, 필요한 지원분야 등을 조사했다. 산자부 관계자는 "정확한 통계가 있었다면 이런 수고를 하지 않고 좀 더 효율적인 정책을 마련할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전국의 1600만 모든 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하는 센서스는 모든 정책의 기초가 된다.

예컨대 2000년 센서스 결과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한 정부는 저출산 대책, 고령친화산업 육성방안 등을 마련하는 데 주력했다. 마찬가지로 이번 센서스에서 소득을 조사하면 차상위계층의 실태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올해도 소득에 대한 질문이 빠졌다. 이뿐 아니다. 주택 소유 수, 주거이동 조사 등 경제정책을 위해 필요한 기초 통계가 여럿 빠졌다. 국민이 부담스러운 질문에 답하는 것을 꺼리는 데다 예산도 부족한 탓이다.

◆ 국가통계의 원천=워싱턴 D C 외곽에 위치한 미국 상무부 산하 센서스국. 인력이 늘면서 사무실이 부족해 새 빌딩을 신축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이들은 벌써 2010년 센서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센서스 준비팀 에디슨 고어 팀장은 "소득과 같은 중요한 항목은 의회 승인을 받아 센서스 때 꼭 반영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2000년 미국 센서스에서는 소득관련 질문이 연봉.사회보장혜택.별거수당 등 모두 아홉 가지에 달했다. 미국 정부가 효율적인 복지정책을 세울 수 있는 것도 이 통계 덕분이다.

센서스에 대한 법적 지위도 보장돼 있다. 미국에서는 센서스 실시를 헌법에 규정하고 있다. 센서스 결과에 따라 주별 하원의원 의석수와 지방 교부금 규모가 정해진다. 캐나다도 마찬가지다. 일본 통계국 곤도 노리오 조사관은 "일본에서는 센서스 결과에 따라 지방 교부금을 나눈다"고 말했다. 미국 센서스국 마크 톨버트 차장은 "센서스가 중요하다 보니 결과가 나오면 주 정부에서 여러 건의 소송을 제기한다"고 말했다. 유타주는 2000년 센서스 때 인구가 223만 명으로 집계돼 하원 의석수가 4명에서 3명으로 줄자 센서스국을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 센서스 권위 약한 한국=한국 센서스의 신뢰도는 높은 편이다. 문제는 센서스가 생산한 자료의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인구주택 센서스 실시는 통계법 시행규칙에 정해져 있다. 지정통계의 하나에 불과하다. 부처가 일부 표본집단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지정통계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센서스가 같은 반열에 놓인 것이다.

선거.병역.교육 등의 행정도 주민등록을 기준으로 이뤄져 국민이 센서스에 관심을 갖기 어렵다. 어느 나라 국민이든 소득을 밝히는 것을 꺼리기는 마찬가지다. 미국 등에서는 조사에 대한 법적 권위를 높여 국민이 답변을 하도록 유도하지만 우리는 이런 법적.행정적 장치가 약하다.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다. 2000년 미국 센서스의 예산은 64억 달러(약 6조4000억원)였다. 인구 1인당 22달러(2만2000원)가 들었다. 올해 우리나라 인구 1인당 센서스 예산은 약 2800원 꼴이다.

워싱턴=김종윤.도쿄=김원배 기자

"도로 예산 230억 달러 센서스 결과 따라 배분"
미국 센서스국 공보담당자

"연간 230억 달러의 도로 관련 예산을 인구.주택 센서스 결과에 따라 배분한다. 이런 예산을 많이 따기 위해 주(州) 정부는 센서스에 많이 참여하도록 주민들을 독려하게 된다."

2000년 미국의 인구주택 센서스 공보책임자였던 센서스국의 제니퍼 막스(사진)는 "센서스 결과는 궁극적으로 자원배분과 정치지형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취임한 바로 다음해인 1790년에 처음으로 인구센서스를 했다. 당시 뉴욕에서 보스턴까지 이동하는 데 8일이 걸릴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18개월간 센서스가 진행된 끝에 인구가 393만 명으로 집계됐다. 하원 의석수와 주별 분배금은 센서스 결과에 맞춰 배분됐다.

그는 "이런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센서스가 발전했기 때문에 미국 국민은 센서스 참여가 의무이면서 자기에게 돌아오는 혜택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소수민족이라고 다를 바 없다. 2000년 센서스 때에는 소수민족 사람들을 위해 14개국 언어로 된 20개의 인쇄.방송광고를 만들어 대대적 캠페인을 했다. 당시 한국어 광고의 문구는 '버스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요?'였다.

그는 "한국인을 비롯한 소수민족 사람들도 센서스에 적극 참여해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등 한인타운에 버스가 더 많이 배치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김종윤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