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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본은 잊으시라, 신개념 스파이 액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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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영화 ‘킹스맨’의 새내기 스파이 에그시(왼쪽)와 그의 멘토가 되는 해리. [사진 폭스코리아]

멋진 수트 차림의 스파이가 그래픽 노블의 파격적 상상력으로 날개를 달았다. 11일 개봉하는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매튜 본 감독, 이하 ‘킹스맨’) 얘기다. 현란한 액션에 귀족 정신과 계급 평등의 메시지를 한데 합쳐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스타일로 승부한다. 21세기 신개념 스파이 액션영화라 부를 만하다.

 2012년에 출간된 그래픽 노블 『킹스맨: 시크릿 서비스』를 원작으로 한 ‘킹스맨’은 런던 뒷골목을 누비는 청년 에그시(태런 애거튼)가 킹스맨이란 비밀 정보 기구의 정예 요원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다. 평민인 에그시에게 귀족 집안의 자제에게만 허락되는 킹스맨의 신입 요원 응시 기회를 준 건, 킹스맨의 최고 요원 해리(콜린 퍼스). 에그시가 그 시험을 거치는 사이, 해리는 미국의 IT 사업가 발렌타인(사무엘 L 잭슨)의 음모를 파헤친다.

  말쑥하게 차려입고 우산·라이터·반지 등 신사의 소지품처럼 꾸민 무기를 활용해 일당백으로 싸우는 해리. 그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유유히 헤쳐 나오는 모습은 스파이영화 통쾌함을 만끽하게 한다. 그가 교회에서 혼자 광신도 70명을 해치우는 3분44초짜리 액션은 온몸의 신경세포가 곤두서는 느낌이다.

 악당 발렌타인은 자신이 선택한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인류를 없앨 황당한 계획을 세운다. 그의 심복 가젤(소피아 부텔라)이 날카로운 금속 다리로 쌩쌩 날아다니며 적을 동강내는 장면은 입체 만화를 보는 것 같다.

 최고급 맞춤 양복, 말끔히 넘긴 머리, 뿔테 안경 등 킹스맨 요원들은 전통적 영국 신사 차림이다. 반대로 악당 발렌타인은 모자와 티셔츠에 청바지까지 미국의 힙합 가수 같은 패션을 고수한다. 발렌타인이 해리를 초대해 맥도날드 햄버거를 내놓는 장면에선 영·미 패션과 문화가 불꽃 튀게 충돌한다.

 이 영화의 주제는 해리가 에그시에게 신사의 수칙을 가르치는 멘토링 과정에 담겨 있다. 해리는 에그시에게 말한다. “신사가 되는 데 출신은 필요 없어. 배우면 되는 거지.” 에그시가 킹스맨 요원이 되는 건, 밑바닥 인생이 피나는 노력을 통해 그럴 듯한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이자, 귀족만의 폐쇄적 집단을 고집하던 킹스맨의 고리타분한 전통을 깨는 과정이다. 숨 돌릴 틈 없이 터지는 재미에 매력적 메시지까지 챙긴 이 영화는 그동안 우리가 알던 ‘007’ 시리즈나 ‘본’ 시리즈는 잠시 잊으라 말한다.

장성란 기자
트레일러=21세기 폭스사

★★★☆(박우성 영화평론가): 수트의 때깔은 기대 이하이지만 폭력의 광기를 신사의 풍모와 버무리는 재치는 기대 이상이다.

★★★★(김효은 기자): 매분 매초 이렇게 재미있기도 쉽지 않다. 온갖 히어로물의 클리셰를 응용·전복해 거부하기 힘든 최신 버전의 스파이영화 신상품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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