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과거사 문제가 동북아 발전 막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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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서울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린 제1회 서울-베이징 포럼에서 루추톈 중국인민외교학회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서울국제포럼과 중국인민외교학회가 공동 주최하고 본사가 후원한 제1회 서울-베이징 포럼은 31일 '동북아에서의 평화와 번영, 지속 가능한가'를 주제로 토론을 했다. 이홍구 전 총리와 한승주 서울국제포럼 회장, 루추톈(盧秋田) 중국인민외교학회 회장, 닝푸쿠이(寧賦魁) 주한 중국대사 등 양국의 각계 인사 5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이날 포럼은 ▶정치.외교 ▶경제 ▶사회.문화 ▶종합 토론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북한 핵과 일본 과거사 문제의 해결 없이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발전은 없다."

주한 중국대사를 지냈던 장팅옌(張庭延) 중.한 우호협회 부회장은 동북아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을 두 가지로 압축했다. 그는 그러나 "이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먼저 한.중 양국이 협력을 강화해 동북아 발전을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안충영 중앙대 교수는 "한.중 협력을 하려면 ▶중국이 동북공정(東北工程)으로 고구려사 논쟁을 일으키거나 ▶한반도 주변에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8월에 중.러 양국이 서해에서 실시한 합동군사훈련을 사례로 들었다.

포럼 참석자들은 북핵 문제와 북한의 개혁.개방 문제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다.

박용옥 한림국제대학원 대학교 부총장은 "중국은 북핵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장 부회장은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중국은 북한에 대략 세 가지 입장을 갖고 있다. 첫째, 우호적인 이웃이어야 한다. 둘째, 중국은 독립.자주 외교정책을 편다. 예컨대 92년 중.한 수교는 북한이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이뤄졌다. 셋째, 북핵 개발에 반대한다"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김달중 연세대 명예교수는 "북핵 해결을 위한 노력의 하나로 북.미 수교가 적극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중국이 이를 위해 힘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6자회담 이후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도 제기됐다. 현인택 고려대 교수는 "북한의 미래가 동북아의 안정과 발전에 큰 변수"라며 "북한이 시장경제로 나아가도록 중국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루신(汝信) 중국사회과학원 고문은 "중국은 북한의 전문가들을 초청해 중국의 개혁.개방 경험을 객관적으로 소개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을 할 것이냐에 대해 회의론도 제기됐다. 김경원 전 사회과학원 원장(전 주미 대사)은 "중국은 마오쩌둥(毛澤東) 사후 치열한 권력투쟁을 통해 새로운 세력이 집권하며 개혁에 나섰다. 반면 북한은 구체제 유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형편이어서 중국식 개혁.개방 모델을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의 과거사 반성 문제와 관련, 루추톈 회장은 "동남아 국가를 방문할 때마다 아시아의 안정을 위해 중.일 화해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는다"며 "일본은 역사를 거울 삼아 미래로 나아가자는 중국의 말을 되새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루 회장은 중.미가 우호 관계를 강화해야 한.미, 한.중 관계에도 유리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포럼에선 또 동북아 지역에서 '다자간 지역 안보 협력체'를 모색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 경제.사회.문화 분야=왕진전(王錦珍) 중국국제무역촉진회 부비서장은 "중국은 올해 한국과의 교역에서 300억 달러의 적자가 예상된다"며 "과도한 무역적자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안충영 교수는 "중국의 무역적자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한국에서 부품을 수입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며 "중국 기업들이 부품 국산화를 추진 중이어서 한국의 무역흑자는 시한부 문제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정영록 서울대 교수는 또 동아시아 지역 발전을 위해 '아시아과기연합대학'의 공동 설치를 주장했다.

한편 정종호 서울대 교수는 동북아의 문화 교류.발전 차원에서 "한류(韓流)와 한풍(漢風.중국 바람)이 특정 국가의 문화가 아니라 아시아 지역의 보편 문화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루신 고문이 "동북아 문화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차이를 인정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덕목에서 출발하자"고 제안해 큰 호응을 얻었다.

장세정 기자<zhang@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이달 6자회담 낙관적 … 실질적 진전 기대"
루추톈 중국인민외교학회장

루추톈(69.사진) 중국인민외교학회 회장은 중국 외교가의 유럽 전문가다. 주 독일 대사로 8년간 일하는 등 유럽에서만 28년을 보냈다. 일선에서 은퇴한 뒤 2003년 5월 제6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후진타오 주석의 북한 방문 의미는.

"중국 최고 지도자의 방북은 2001년 장쩌민 전 주석에 이어 4년 만이다. 중.북 관계는 새로운 발전 단계로 진입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성과는 양국 정상이 북핵 문제와 관련해 평화적인 해결에 합의한 것이다."

-11월 열릴 제5차 6자회담에 대한 전망은.

"낙관적으로 본다. 4차 회담에선 큰 틀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 5차 회담부터는 실질적 진전을 이루는 게 중요하다. 관건은 북.미 간에 어떻게 상호 신뢰를 확보하느냐다.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참가국들이 보여준 의지와 노력 등을 감안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중국 위협론'이 끊임없이 제기되는데.

"중.미는 8월 베이징에서 열린 첫 고위급 회담을 통해 상호 이해를 증진시켰다. 상호 신뢰 구축으로 해결할 수 있다."

-중국 4세대 최고 지도부가 출범한 뒤 3년 가까이 일본을 방문하지 않고 있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관련이 있는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신사참배가 아시아인에게 상처를 주고 있으며 중.일 정치 환경에도 나쁜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후 주석은 치국 이념으로 '조화(和諧) 사회' 건설을 내세운다. 무엇을 조화시키겠다는 것인가.

"크게 네 가지다. 경제.사회적으로 개인 간, 동.서부 지역 간, 국내.국외 간에 존재하는 격차와 사람.자연 간의 부조화를 극복하자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공정.정의.믿음.우애 있는 사회를 건설한다는 목표다."

유상철 기자

제3국 공동 진출 … 에너지 공동 탐사
한.중 협력방안 쏟아져
이모저모

31일 오전 8시에 시작된 첫 번째 서울-베이징 포럼은 주제별 토론마다 예정 시간을 넘기는 열띤 분위기 속에서 오후 5시까지 계속됐다.

○…포럼에선 한.중 협력과 동북아의 평화.발전을 위한 이색 아이디어들이 잇따랐다. 정영록 서울대 교수는 한국의 인천국제공항을 중국 동북 지역의 물동량을 처리하는 허브(중심)로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정종호 서울대 교수는 '아시아 컨센서스'를 형성하기 위한 담론의 장으로 '아시아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를 발간하자고 역설했다. 한편 루신 중국사회과학원 고문은 중국 측 참석자 가운데 최고령(74세)이었지만 발표 원고를 유려한 육필로 작성하는 열의를 보여 감탄을 낳았다.

○…종합 토론에서 정종욱 전 주중대사(아주대 교수)는 "에너지 공동 탐사.생산.저장 등 구체적인 한.중 협력 방안이 많이 나왔다"고 평가했다. 또 왕전(王珍) 중국인민외교학회 부회장은 "양국 기업의 제3국 공동 진출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다음번 포럼 때 좀 더 구체화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재계 인사들도 포럼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날 오찬은 이종희 대한항공 총괄사장이, 만찬은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한.중 우호협회장)이 함께했다. 정구현 삼성경제연구소장은 1일 오전 포럼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2006년 한국 경제 전망'을 주제로 강연한다. 중국 측 참석자들은 1일 오후 울산으로 이동해 현대중공업.현대자동차를 참관한 뒤 2일 귀국할 예정이다.

장세정.고수석 기자

◆서울국제포럼=비영리 민간단체이며 92년 사단법인으로 출발했다. 회원은 이홍구 전 총리와 김경원 전 주미 대사,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현홍주 전 주미 대사 등 외교.안보 분야 인사가 많다. 학계에선 김달중 연세대 명예교수와 이상우 한림대 총장, 재계에선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과 정몽준 의원 등 각계 인사 60여 명이 참가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이슈를 주로 연구한다. 이를 위해 전문가를 초청해 양자 토론을 하거나 공동 정책연구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 중국인민외교학회=1949년 저우언라이(周恩來) 당시 총리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설립 초기엔 외교정책.대외문제 등 외교부의 싱크탱크 역할을 했다. 외교부가 대외에 시간을 다퉈 공표해야 했던 사항도 인민외교학회의 연구.검토를 거쳐 결정된 게 많다. 55년부터 민간외교 업무가 추가됐다. 지금까지 인민외교학회가 중국으로 초청한 세계 150여 개 국가.조직의 방문단 수는 2400여 개에 달한다. 산하에 아시아부.유럽부.북미부 등 7개 기관을 갖춰 '제2의 중국 외교부'라는 말을 듣는다.

유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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