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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활용품 내 마음대로 내 방식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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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중동에 있는 메이앤 가구공방에서 수강생이 자전거 안장 모양의 의자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신동연 객원기자

일주일 내내 TV에서 자급자족 생활을 보여준다. SNS와 블로그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텃밭을 가꾸고 요리하고 옷과 가구를 만든다. 자신의 감각을 더해 직접 만든 소품들이 ‘좋아요’(SNS의 공감 버튼)를 달고 퍼져나가고 있다. 내가 필요한 것은 내 취향대로 만들어 사용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배우 유해진이 한나절 내내 바닷물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해가 질 무렵에야 겨우 우럭 두 마리를 잡았다. 차승원이 우럭을 굽고 양념 소스를 얹어 저녁 메뉴로 우럭탕수를 내놓는다. 시청률 고공행진을 하며 화제가 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의 한 장면이다. 시즌1에서는 도시 남자 이서진과 옥택연이 염소의 젖을 짜 리코타 치즈를 만들고 닭장에서 공수한 계란으로 오믈렛을 만들기도 했다. 재료 생산부터 제조까지 직접 하는 ‘자급자족 라이프’다. 멤버를 교체하고 시즌2의 문을 연 ‘인간의 조건’ 역시 자급자족 전원생활을 보여준다.

취향이 반영된 물건이 더 가치 있다

블로그와 각종 SNS 역시 자신이 직접 꾸려가는 생활들로 넘쳐난다.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이효리의 블로그는 편안하고 소박한 일상으로 가득하다. 텃밭에서 기른 열무, 숲에서 딴 고사리로 밥상을 차리고 반려견 순심이의 털도 직접 깎는다.

이효리는 제주 생활의 최종 목표는 ‘자급자족’이라고 했다. 배우 엄지원은 무지광목백을 사서 앞뒷면에 그림을 그려넣어 만든 에코백을 SNS에 소개해 화제가 됐다. 소유진의 뜨개질 솜씨는 SNS에서 유명하다. 직접 만든 색색의 털모자를 보여주며 부러움을 샀고, 털모자는 자선활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필요에 의해 가구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배우 이천희는 결혼하면서 집에 들일 가구와 딸 소유를 위한 침대 등 생활 전반에 필요한 가구를 꾸준히 만들어 왔다. 유명인들의 자급자족 일상은 대중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직접 뜬 뜨개모자가 유행하고 있고, 가구공방은 수강생으로 북적인다. 자급자족 관련 도서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패브릭 DIY, 텃밭 가꾸기, 소가구 제작 관련 서적은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제과·제빵을 위한 DIY 용품의 매출도 30~40% 이상 오르고 있다.

21세기형 자급자족은 사회적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말한다. 누군가에게 의지해 살아가기보다는 스스로 삶을 기획하고 해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싸고 좋은 것보다 내 취향이 반영된 것과 그 과정에 대한 가치가 훨씬 중요해졌다.

송성희 십년후연구소 대표는 “이 시대의 자급자족이란 퇴화한 신체 기능을 살려 정신의 힘을 기르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옷을 만들어 입고 농사를 짓는 많은 일을 직접 하며 살았었지만 지금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시장경제 안에서 제공받는다”며 “생활은 안락해졌지만 우리는 오히려 무능력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정신의 힘을 기르는 일 중 하나가 바로 자급자족하는 것이다.

고민하며 만드는 과정에서 건강한 삶 느껴

1 배우 소유진(왼쪽)이 직접 뜨개질해 만든 모자를 쓰고 셀카를 찍고 있다. 2 엄지원이 직접 그림을 그려 만든 에코백들. [사진 각 배우 인스타그램]

물론 자급자족하는 일은 간단치 않다. 토마토를 잘 키울 수 있을지, 가구 만드는 법은 어디서 배우면 되는지, 어설프게 만들다 비싼 재료만 버리게 되는 건 아닌지 고민이 앞선다. 중요한 건 시작하는 일이다. 토마토 모종을 구하고 어떤 가구를 만들지 설계도를 그리면 된다. 스스로 부닥쳐야 얻을 수 있다

자급자족 생활을 지향하는 이들의 삶은 ‘소박’하고 마음은 ‘여유’롭고 생활의 흐름은 ‘자연’으로 향한다. 궁극적인 목적은 ‘건강한 삶’이다. 클릭 한 번에 제품을 사고 당일 배송으로 그날 산 물건을 받는 초스피드 라이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한나절을 투자한 유해진의 낚시와 이천희가 만든 아기 침대, 텃밭에서 딴 깻잎과 상추를 넣어 끓인 소길댁 이효리의 된장찌개는 ‘잠시 멈춤’ 신호를 보낸다.

지난해 봄 출간된 존 세이무어의 책 『대지의 선물』은 도시 외곽에 있는 농가주택을 빌려 땅을 일궈 농작물을 심고 가축을 기르는 등 먹고 입고 자는 모든 것을 가족 스스로 해결하는 과정이 상세하게 정리돼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사람이 건강하게 살려면 여름이든 겨울이든 신선한 공기 속에서 몸을 쓰며 힘들고 다양한 일을 해야 한다. 그저 아프지 않다는 의미에서 건강하다는 말이 아니라 정말 건강한 삶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얘기한다. 어떻게 건강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는 생각해 볼 문제다. 

하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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