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자! 이제는] 22. 사람 없다고…아무나 판매직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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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중견 자산운용사의 마케팅 담당 임원 A씨는 얼마 전 모 은행 펀드판매 창구의 직원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말문이 막혔다.

기준가는 펀드에 편입된 자산의 실제 가치를 매일 평가해 계산한 값으로 펀드투자의 가장 기본이 되는 용어. A씨는 "펀드 판매 직원이 기준가를 모른다는 것은 증권사 직원이 주가를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일선 은행 창구의 '묻지마 펀드 판매' 행태를 걱정했다.

펀드시장 다시 활짝 열리고 있지만 일선 펀드 판매 창구의 부족한 전문성과 펀드 운용사의 인력난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자칫 2000년 '바이코리아 열풍' 때처럼 펀드투자가 한 차례 유행에 그치고 다시 시들해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선 판매 창구의 '불완전 판매'문제가 여전하다. 특히 적립식펀드 시장의 60% 이상을 장악한 은행 쪽이 심각하다. 펀드를 마치 원금보장형 예금처럼 팔거나, 심지어 과거 수익률을 근거로 고수익이 가능하다고 고객을 '유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 가입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변액보험도 비슷하다. 변액보험은 가입 초기 자금의 일정액을 판매자 수당 등으로 떼기 때문에 10년 이상은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이 상품 역시 판매자들이 제대로 알리지 않고 일반 펀드처럼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펀드 및 변액보험의 불완전 판매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자 금융감독원은 뒤늦게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금감원은 다음달부터 은행.증권.보험사 등 주요 판매사들의 본점과 지점을 대상으로 판매 실태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에 나설 방침이다.

돈을 맡아 굴리는 자산운용사들은 전문인력의 부족과 잦은 이동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지난 2년간 주식형펀드 자금은 두 배 이상 급증했지만 운용 인력의 수는 600명 안팎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특히 부동산 펀드 등 과거에 없던 신개념 상품의 경우 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

자산운용협회 조사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9월까지 6847개에 달하는 국내 펀드 중 13%인 887개 펀드의 매니저가 교체됐다. 같은 펀드가 여러 차례 바뀌기도 해 총 교체건수는 1256건. 국내 펀드 매니저가 600명 안팎이므로 1인당 두 번꼴로 운용 대상 펀드를 바꾼 셈이다.

미국 등 선진 자본시장에선 한 사람의 펀드매니저가 10년 이상 같은 펀드를 책임지고 운용하는 게 보통이다. 한국펀드평가 우재룡 대표는 "미국 등에선 큰 문제가 없으면 펀드 매니저를 바꾸지 않아 길게 보고 정석투자하는 게 가능하다"며 "국내는 교체가 너무 잦은 데다 팀제라는 이름으로 개별 펀드매니저의 실적도 추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펀드매니저의 이동이 잦은 것은 업계가 장기 인력 양성에 투자하기보다 이름났다 싶은 펀드매니저를 스카우트해 쓰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또 수익률이 조금만 처져도 매니저를 바꿔버리기 일쑤다. 펀드매니저가 너무 자주 바뀌면서 펀드 운용의 안정성.책임성이 떨어지면 결국 그 피해는 투자자들에게 돌아간다.

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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