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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민 공급용 미끼 ‘싼 전세’ 주의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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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장기전세주택 입주 자격이 불확실한 철거민 특별공급 거래가 전세난 속에 늘고 있다. 사진은 철거민 특별공급이 실시된 택지지구의 하나인 서울 강남구 세곡2지구. [사진 SH공사]

서울 강남구에 사는 직장인 심모(35)씨는 최근 ‘자격제한 없이 장기전세주택 입주’라는 문자 한통을 받았다. 1억~3억 원만 있으면 철거민 특별공급 대상이 돼 서울 마곡·장지지구 등의 전용면적 59·84㎡형 아파트에 전세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심씨는 “특별한 자격 없이 주변 시세보다 싸게 전세를 살 수 있다고 해 상담을 받았다”고 말했다.

 요즘 이런 휴대폰 문자 메시지가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되는가 하면, 유인물(전단)이 서울 주택가를 중심으로 나돌고 있다. 철거 예정 주택을 매입하면 서울 주요 택지지구 내 장기전세주택 입주자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장기전세주택은 주변 시세의 80% 수준의 임대료로 최장 20년까지 살 수 있는 임대주택이다. 재건축 이주 수요 증가 등으로 연초부터 전셋값이 치솟자 과거 성행하던 ‘철거민 특별공급’ 거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철거민 특별공급 거래는 과거와 다소 다르다. 과거엔 철거민의 장기전세주택 입주권(이른바 ‘철거민 딱지’)을 거래하는 형태였다면 요즘엔 철거 예정 주택을 매입하는 식이다. 도로·공원 등의 개발 사업지 내에 주택을 갖고 있으면 철거민 특별공급 대상자가 된다. 특별공급 대상자는 소득제한 등 특별한 제한 없이 장기전세주택에 입주할 수 있다(철거민임대주택특별공급제도). 브로커들은 바로 이 점을 노린 것이다.

 한 브로커는 “철거민 딱지 거래는 엄연히 불법”이라며 “하지만 개발 사업지 내 철거 예정 주택은 합법적으로 거래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브로커는 “현재 서울의 전용면적 40㎡ 이하 철거 예정 주택의 가격은 1억1000만~2억원 선”이라며 “40㎡ 이하 철거 예정 주택을 갖고 있으면 서울 주요 택지지구 내 59㎡형 아파트 장기전세주택에 입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철거 대상 주택을 매입한 투자자가 향후 철거민 특별공급 자격을 갖느냐는 것이다. 서울시는 과거에도 이 같은 편법 거래가 성행하자 철거민 특별공급 대상 자격을 강화한 바 있다(2012년 8월). 시는 당시 장기전세주택 특별공급 규칙상 특별공급 대상 기준을 ‘사업시행인가 고시일’에서 ‘최초 주민열람 공고일’로 개정했다.

 때문에 최초 주민열람 공고일 이후 철거 대상 주택을 매입했다면 특별공급 대상 자격이 안돼 장기전제주택에 입주할 수 없다. 주민열람 공고일 이후 철거 대상 주택을 거래하는 것 자체도 불법이다. 하지만 최초 주민열람 공고일 이전 거래는 가능하다.

 그렇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주민열람 공고일 이전이라면 사업 시행 자체를 알 수가 없다. SH공사 관계자는 “사실상 소문만 믿고 투자하는 것”이라며 “실제로 개발이 된다고 하더라도 해당 주택이 개발구역에 포함될 지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투자금이 상당기간 묶일 수밖에 없다. 현재 서울엔 사업 부지로 지정됐지만 무기한 사업이 연기된 곳도 적지 않다. 법무법인 로티스의 최광석 변호사는 “주기적으로 사무실을 옮기는 브로커들이 많아 책임을 묻기도 쉽지 않다”며 “확정되지 않은 개발 계획을 믿고 주택 거래를 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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