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3대 무상복지’ 30%만 줄여도 7조원 절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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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허모(80·여)씨는 매달 기초연금 20만원을 받는다. 소득은 따로 없지만 대기업 임원인 50대 아들 내외와 함께 살며 용돈을 받아 쓴다. 덕분에 허씨 통장에 입금된 연금은 고스란히 통장에 쌓여 있다. 5년 전 남편이 사망하며 남긴 40평형대 아파트 등 7억원대 재산은 아들 몫으로 넘겼다. 허씨는 하루 두 번은 지하철을 탄다. 주로 쇼핑을 하거나 놀러 갈 때다. 그는 “나라에서 공돈도 주고 공짜로 지하철도 태워주니 고맙긴 한데 나처럼 여유 있는 사람한테 줄 돈으로 형편 어려운 노인들을 더 도와주면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올해 한국의 복지 예산은 115조7000억원으로, 2005년 50조8000억원에서 10년 만에 두 배로 늘었다. 정부 총예산(375조4000억원)의 30%에 육박한다. 소득 수준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제공되는 복지 혜택이 늘어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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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야가 증세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정부가 이를 시행하더라도 이런 복지부터 손을 대는 ‘복지 다이어트’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0~5세 대상 보육(교육)료·양육수당 지원 등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지급되는 복지제도가 다이어트의 첫 번째 대상이다. 최병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은 “숨 가쁘게 양적인 확대를 했으니 이제는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고 더 필요한 곳에 쓰는 방식으로 효율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주부 김모(35·서울 서초구)씨는 만 2세 된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6개월 된 둘째 딸을 집에서 돌본다. 김씨는 15억원이 넘는 고급 아파트에 살지만 매달 41만3000원의 보육료와 20만원의 양육수당을 지원받는다. 이런 식으로 쓰인 무상보육 예산은 올해 10조5000억원으로 2011년의 두 배가 됐다.

 올해 기초연금 예산은 10조원이다. 매년 수급자가 20만~30만 명씩 늘어난다. 2040년엔 100조원, 2060년엔 228조8000억원이 들어간다. 이에 따라 소득 하위 70% 노인들에게 거의 차등 없이 최고 20만원을 지급하는 기초연금도 이대로면 20년 내 국가 재정을 흔드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저소득 노인 위주로, 어려운 노인에게 더 많이 돌아가도록 계층별로 더 차등화하는 등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이외에 무상급식에 2조6500억원, 65세 이상 지하철 무임승차(수도권)에 3000억원이 들어간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대학생 반값 등록금 예산도 4조원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무상보육·기초연금·무상급식 등 3대 무상복지에서 30%만 덜어내도 7조원의 복지비를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무상보육·급식 대상에서 소득 상위계층 30%를 제외하고, 기초연금을 구조조정하면 현재 23조1500억원에서 16조2050억원으로 준다. 남는 돈으로 복지 혜택이 절실한 저소득층을 지원하거나 국공립 보육시설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무상복지 대상에서 소득을 기준으로 상위층은 제외해야 한다. 다만 중산층이 계속 줄어들고 있는 만큼 이들을 제외해선 안 되고, 중산층의 범위를 제대로 다시 정해 그 위의 상위층을 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 조경엽 선임연구위원은 “고령화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재정이 파탄 날 수밖에 없다. 보편적인 무상복지제도를 선별적 복지로 바꿔 불필요한 지출부터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스더·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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