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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반찬 얘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평소에 반찬 투정을 모르던 네살박이 아이가 오늘 아침 밥상을 받고 나서 『아이, 이건 이제 질렸어. 먹기 싫어.』
더위의 짜증을 그렇게라도 발산하고 싶었는지 신경질이 가득한 목소리로 계란 지단을 가리키곤 곧 밀쳐내는 것이었다. 노르스름하게 잘 구워져 반찬이지만 『예쁘기도 하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지단 또는 프라이는 약방의 감초처럼 늘 상에 오르는 것이었는데 아이는 이제 식상을 한 모양이었다.
도시의 변두리 지역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던 나는 음식이라고 이름붙일 수 없는 것들을 먹으며 성장했다.
우리들의 유일한 간식은 옥수수·고구마 감자 등이었다.
그때 내가 상상할 수 있었던 최고의 반찬은 쇠고기국과 계란이었다. 특히나 조그마한 계란 한알이 그렇게 동경일 수가 없었다.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혜령」이라는 내 뒷자리의 친구는 눈이 호수처럼 그윽한 부자집 따님이었는데, 그 애의 도시락은 늘 우리들을 부러움의 경지로 몰아넣곤 했다. 혜령이는 밥통보다 더 큰 반찬통을 가지고 다녔는데, 그 안엔 늘 대여섯 가지나 되는 맛난 반찬이 가득해 우리가 자주 얻어먹기도 했다.
나는 혜령이의 그 반찬통 보다는 도시락 한 끝에 얌전히 놓여 있는 삶은 계란 반쪽이 늘 부러웠다. 혜령이의 어머니는 아침마다 도시락을 4개 싸는데 계란을 두 개 삶아 반쪽씩 밥 옆에 넣어 주셨던 것이다.
그 뒤로 성장해 어린 시절엔 상상도 못했던 많은 음식을 먹어본 뒤에도 나는 계란에 대한 향수를 늘 잊지 못했다.
대학 시절, 지금의 남편이 된 가난한 애인이 가정교사 한달 월급으로 받은 돈을 내 생일에 두 사람의 음식값으로 다 날린 날에도 나는 한편으로「이 비싼 음식도 계란만은 못해』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도 아이가 지겨워하는지도 모르고 계란 반찬은 꼭꼭 챙기는 엄마가 되어 버린 것이다. 참 쉽게 잊혀지지 않는 일이다. 아마 더 큰 투정을 받게 되더라도 아이의 도시락에 삶은 계란 반쪽을 넣어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싶지만 글쎄, 아이가 학교 갈 때쯤이면 아마 엄마의 도시락이 필요 없는 날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현숙 <서울 강동구 등촌동 425의75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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