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반찬 투정을 모르던 네살박이 아이가 오늘 아침 밥상을 받고 나서 『아이, 이건 이제 질렸어. 먹기 싫어.』
더위의 짜증을 그렇게라도 발산하고 싶었는지 신경질이 가득한 목소리로 계란 지단을 가리키곤 곧 밀쳐내는 것이었다. 노르스름하게 잘 구워져 반찬이지만 『예쁘기도 하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지단 또는 프라이는 약방의 감초처럼 늘 상에 오르는 것이었는데 아이는 이제 식상을 한 모양이었다.
도시의 변두리 지역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던 나는 음식이라고 이름붙일 수 없는 것들을 먹으며 성장했다.
우리들의 유일한 간식은 옥수수·고구마 감자 등이었다.
그때 내가 상상할 수 있었던 최고의 반찬은 쇠고기국과 계란이었다. 특히나 조그마한 계란 한알이 그렇게 동경일 수가 없었다.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혜령」이라는 내 뒷자리의 친구는 눈이 호수처럼 그윽한 부자집 따님이었는데, 그 애의 도시락은 늘 우리들을 부러움의 경지로 몰아넣곤 했다. 혜령이는 밥통보다 더 큰 반찬통을 가지고 다녔는데, 그 안엔 늘 대여섯 가지나 되는 맛난 반찬이 가득해 우리가 자주 얻어먹기도 했다.
나는 혜령이의 그 반찬통 보다는 도시락 한 끝에 얌전히 놓여 있는 삶은 계란 반쪽이 늘 부러웠다. 혜령이의 어머니는 아침마다 도시락을 4개 싸는데 계란을 두 개 삶아 반쪽씩 밥 옆에 넣어 주셨던 것이다.
그 뒤로 성장해 어린 시절엔 상상도 못했던 많은 음식을 먹어본 뒤에도 나는 계란에 대한 향수를 늘 잊지 못했다.
대학 시절, 지금의 남편이 된 가난한 애인이 가정교사 한달 월급으로 받은 돈을 내 생일에 두 사람의 음식값으로 다 날린 날에도 나는 한편으로「이 비싼 음식도 계란만은 못해』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도 아이가 지겨워하는지도 모르고 계란 반찬은 꼭꼭 챙기는 엄마가 되어 버린 것이다. 참 쉽게 잊혀지지 않는 일이다. 아마 더 큰 투정을 받게 되더라도 아이의 도시락에 삶은 계란 반쪽을 넣어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싶지만 글쎄, 아이가 학교 갈 때쯤이면 아마 엄마의 도시락이 필요 없는 날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현숙 <서울 강동구 등촌동 425의75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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