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me] 점토인형-꼭두각시, 누가 더 생생할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대표적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점토를 쓰는 클레이메이션과 인형을 사용하는 퍼핏애니메이션이 있다. 그리고 11월 3일. '클레이메이션의 전설'과 '인형애니메이션의 신화'가 국내에서 동시에 맞붙는다.

영국 아드먼 스튜디오와 미국의 드림웍스가 '치킨런'에 이어 새로 선보이는 '월래스&그로밋: 거대 토끼의 저주'와 '크리스마스의 악몽'으로 진가를 높인 미국 팀 버튼 감독의 신작 '유령신부'다.

컴퓨터 그래픽이 현실과 가상세계의 벽을 허문 요즘, 대표적인 수공예 작업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 전해주는 '장인의 손맛'이란 어떤 것일까. 한국 클레이메이션계의 샛별 권오성(35)감독과 함께 두 작품을 미리 감상했다. 그는 '강아지 똥'으로 2003년 도쿄국제애니메이션축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고 현재 국내 최초의 장편 클레이메이션 '럭키 서울'을 제작 중이다.

#점토인형과 꼭두각시의 대결

'월래스…'의 점토인형은 뭉툭하면서 통통한 느낌을 준다. 손으로 조금씩 찰흙을 문지르거나 눌러 미세한 동작이나 표정 변화를 나타낸다. 영화를 보면 인형을 움직인 사람의 손자국과 지문이 보인다. 아드먼 측은 "'치킨런'에서 선보인 매끈한 느낌을 줄이고 대신 울퉁불퉁하게 만들어 손맛을 주는 데 치중했다"고 말한다.

천과 실리콘으로 만든 인형을 사용하는 '유령신부'에서 길고 비쩍 마른 꼭두각시는 버튼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다. 어두운 조명과 함께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일조한다. 더욱 섬세한 표정연기를 위해 인형의 머릿속에 전동 장치를 집어넣었다. 여러 개의 머리를 만들어 장면마다 갈아끼운 '크리스마스…'때보다 진보한 셈이다. 덕분에 말할 때 입 주위 근육이 움직이는 것이나 눈꼬리가 올라가고 처지는 것까지 가능해졌다.

엄청난 시간과 공력이 필요한 이 같은 작업을 왜 하는 것일까. '월래스…'의 파크 감독이나 '유령 신부'의 버튼 감독은 입을 모아 말한다.

"캐릭터를 만지고 손으로 움직이면 마치 마법을 쓰는 듯한 느낌입니다. 피노키오나 프랑켄슈타인처럼, 생명이 없는 물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재미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지요."

#영국식 유머에 볼거리 가득

치즈를 너무나 좋아하는 발명가 월래스와 그의 충직하고 영리한 개 그로밋이 활약하는 이 영화에는 볼거리가 많다. 체형이 제각각인 40명을 비롯해 표정이 서로 다른 토끼 30마리, 호박.당근.오이 등 형형색색의 야채에 각양각색의 영국식 정원까지. 게다가 '늑대인간''킹콩'등을 패러디한 장면을 음미하는 재미도 있다.

'치킨런'이후 차기작이었던 '토끼와 거북이'를 여러 이유로 포기했던 아드먼 측은 결국 이 영화에서 토끼를 살려냈다. 파크 감독은 "할리우드 고전 호러물에 토끼를 결합, 야채를 먹는 거대한 몬스터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권오성 감독은 "다양한 인물, 구석구석 잘 만든 세트, 매끄러운 연출력이 역시 아드먼"이라면서도 이야기의 감동이나 여운은 깊은 맛이 부족해 기대에 다소 미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영국 브리스톨에 있는 아드먼 스튜디오는 10일 새벽 발생한 화재로 1972년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모아온 각종 세트.소품 등 귀중한 자료가 모두 잿더미로 변하는 불운을 겪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거대 토끼의 저주'의 관련 자료는 다른 곳에서 전시 중이어서 화마를 피했다.

#기발한 지하세계 속 유머와 풍자

'유령신부'는 기이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러시아 민담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한 젊은이가 실수로 유령과 결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렇다고 공포물은 아니다. 오히려 낭만적인 사랑이 있고 거만함으로 똘똘 뭉친 상류계급, 돈만 아는 졸부,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종교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가득하다. 유령들이 사는 지하세계는 밝고 활기가 넘치지만 인간들의 탐욕으로 얼룩진 지상세계는 어둡고 우울하게 그려져 묘한 대조를 이룬다.

바람에 나부끼는 유령 신부의 웨딩드레스를 표현하기 위해 가느다란 철사를 천에 넣어 하늘거리게 하는 등 실감나는 영상을 위해 들인 공력은 경이로울 정도.

다만 인형의 질감은 전작 '크리스마스 악몽'에 비해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권 감독은 "인형의 움직임을 지나치게 정교하게 처리하는 바람에 컴퓨터 그래픽과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라며 "쉬운 컴퓨터를 놔두고 일부러 힘들게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장점을 오히려 살리지 못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한국의 도전

권 감독은 "스톱모션은 세계적으로 경쟁상대가 많지 않아 전망이 밝은 분야"라며 "두 작품을 보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기술적으로 볼 때 우리보다 크게 대단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가 제작 중인 '럭키 서울'(사진)은 1970년대 시골에서 올라온 어린 남매가 낯선 서울에서 성장하는 이야기다. 연탄배달.만화가게.흑백TV 등 당시 생활상이 아련하게 그려진다. 몇 년 전 '엄마 어렸을 적엔…'이란 인형전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50억원 정도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이 작품에는 업계(싸이더스픽쳐스.팡고엔터테인먼트).학계(동국대).지자체(경기디지털아트센터)가 힘을 모아 참여하고 있다. 권 감독은 "우리 문화와 정서를 담은 새로운 스타일을 전 세계에 선보일 계획"이라며 "현재 시나리오 작업을 거의 마쳤으며 2008년 개봉이 목표"라고 소개했다.

주정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