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공습경보|최희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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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8월7일. 거의 열흘째 계속 되는 불볕 더위로 한낮의 거리는 한가하다할 이만큼 비어 있었다.
점심이 막 끝나 잠시TV에 눈을 주며 졸음을 쫓고 있는데 별안간 화면에 민방위경보발령을 알리는 자막이 나왔다.
의아해 하는 우리에게 TV는 계속해서 급박한 상황을 알리는 민방위요원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경기·인천지역이 적기로부터 공습을 받고 있다는 엄청난 소식을 전해 주었다. 순간 눈 앞이 캄캄해지고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인천에도 경계경보가 발령됐고 한낮의 도심거리는 긴장된 정적에 휩싸였다. 경계경보는 공습경보로 바뀌고 TV에서는 지하실이나 가장 낮은 자세로 대피할 것을 당부하는 방송이 계속되며 각 관공서는 전시태세를 갖출 것을 지시했다.
불안에 떨며 당황한 나는 무엇부터 어찌해야 할줄을 몰랐다. 공연히 옆집에도 뛰어가 보고, 가게앞 뒷문도 닫아보고, 텅빈 거리도 내다보고….
덥다는 느낌은 고사하고 전율마저 느껴지는 길고도 긴 몇분간이었다. 다행히 공습경보가 경계경보로 바뀌고 경계경보가 해제되면서 TV는 온 국민은 평상시의 생활로 돌아갈 것을 알려왔다. 그러나 한번 놀란 가슴은 얼른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 실제상황이 과연 우리 국민을 그토록 놀라게 했어도 좋았던 것인지 지금생각해도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다. 큰딸아이가 평온을 되찾으며 하는 제1성은 『엄마! 우리 미국으로 이민가자, 응.』 『우리 모두가 이민가면 우리 나라는 누가 지키니? 만약 무슨 일이 생겼다 해도 끝까지 남아서 우리 나라를 지켜야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일이란다.』
내 마음 속에 다짐하면서 딸 아이에게 들려준 말이다.
인천시남구주안2동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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