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의 정치Q] 노 대통령과 8인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8인회는 1975년 합격한 사시 17회 59명 중 사법연수원 시절부터 가깝게 지낸 8명 정도를 말한다. 원래 8인회란 이름은 없었다. 노 대통령이 당선되자 언론에서 작명한 것이다. 나머지 6인은 이종백 서울중앙지검장, 김종대 부산고법부장, 헌법재판소의 조대현 재판관과 서상홍 사무차장, 삼성그룹의 이종왕 법무실장, 법무법인 화우의 강보현 변호사다.

75년 서울 서소문 사법연수원에 들어간 '김해 촌뜨기' 노무현에겐 고민거리가 하나 있었다. 어울릴 사람이 없는 것이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다들 끼리끼리 나가는데 노무현은 혼자 서성거려야 했다. 얼마 지나 이를 눈치챈 몇몇이 그를 끼워주었다. 노 대통령은 나중에 자서전에 "얼마나 고마웠던지 연수원 시절 내내 가깝게 지냈고, 지금까지도 가끔씩 만나며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적었다. 이들은 10개 줄이었던 연수원 강의실에서 대개 2~4번째 줄에 앉았다. 노 대통령이 46년생이고 나머지는 48~51년 생이다. 한 멤버는 "우리가 '형, 점심 먹으러 갑시다'라고 했다"고 회고했다.

면면을 보면 노 대통령은 특별회원격이었던 것 같다. 그는 상고 졸업이지만 7인은 경기.경북.부산.용산.대광고에 모두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어울리는 데는 아무래도 지역 연고가 작용한 듯하다. 노 대통령을 포함해 경남이 4명, 경북이 2명이다.

노 대통령은 80년대 초반 '민주화 투쟁 변호사'의 길로 뛰어들었다. 나머지 7인은 검찰.법원의 엘리트 코스를 달렸다. 그런데도 어떻게 친교가 유지됐을까. 한 멤버는 "법조 인생으로 따지면 우리는 일종의 죽마고우(竹馬故友)다. 술을 좋아해 서로 잘 어울렸다. 노 대통령이 부산에서 재야투쟁을 할 때는 시국관을 놓고 서로 욕도 하고 울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권력기관 독립을 업적으로 꼽고 있는 노 대통령은 자신이 신뢰하는 친구를 검찰총장에 내정했다. 정 내정자는 '친구 대통령'과 검찰 조직 사이에서 시험에 들게 됐다. 자신의 역사관이 옳다고 확신하는 대통령에게 코드를 맞출 것인가, 아니면 유한한 정권과 상관없이 무한한 검찰의 길을 개척할 것인가. 8인회를 보는 세상의 눈이 날카롭다.

김진 정치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