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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일의 인사이드 피치] 219. 결코 패배자 아닌 '2등' 김기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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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고작 27개의 안타만 더 때렸더라면 그는 영원한 3할 타자로 기억될 수 있었다. 홈런도 딱 한 개만 더 날렸더라면 250개를 채울 수 있었다. 그런 상징적 숫자에서 그는 한 뼘이 모자랐다. 통산 0.294(4975타수 1465안타)의 타율과 249개의 홈런. 뭔가 아쉬운 모자람이 그의 운명인가. 김기태(SK)가 은퇴를 선언한 25일, 그의 기록을 뒤적이다가 얻은 느낌이다.

김기태의 야구인생은 그랬다. 뭔가 아쉬웠다. 15년 동안 뛰면서 한번도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1990년대를 풍미한 홈런 타자지만 장종훈이라는 '1등'에 가려 있었다. 등수로 따지면 2등이었다.

96년 만년 하위 쌍방울을 정규 시즌 2위로 끌어올렸을 때, 현대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먼저 2승을 거두고도 3연패 당해 한국시리즈 무대에 서지 못했다. 2001년 삼성에서도 그랬다. 팀은 정규 시즌 1위를 했고,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그러나 두산과의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그는 김응용 당시 감독과 불편한 관계가 됐고,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2002년 그가 삼성을 떠나 SK로 팀을 옮기자 삼성은 한국시리즈 정상에 섰다. 그가 2003년 SK를 이끌고 한국시리즈 무대에 처음 섰을 때, SK는 현대의 벽을 넘지 못했다. 3승4패. 준우승이었다. 올해도 비슷했다. 정규 시즌 마지막날 SK는 2위에서 3위로 미끄러졌고, 그때의 내리막 분위기를 그대로 타고 준플레이오프에서 한화에 졌다. 그리고 그렇게 아쉽게 그는 정상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유니폼을 벗었다.

우리는 2등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프로야구 원년 백인천의 4할 타율이 영원히 회자되지만, 그때 OB의 우승을 이끌며 타격 2위에 올랐던 윤동균은 팬들의 가슴에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가. 83년 장명부의 30승을 노래처럼 입에 올리지만, 그때 20승을 거두며 다승 2위를 한 이상윤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 송진우의 프로 최다승(193승)과 200승 도전을 찬양하지만, 송진우와 프로 입단 동기로서 통산 최다승 2위로 은퇴한 이강철의 152승은 앞으로 어떻게 야구사에 새길 것인가. 혹시 우리는 그들을 칭송하기보다 그저 '아름다운'이라는 말로 미화시키며 패배자로 부르고 있지는 않은가.

김기태는 2등이었지만 결코 패배자가 아니다. 그는 아쉬운 기록들을 남겼지만 그 이전에 대단한 것들이다. 그래서 그의 은퇴는 쓸쓸하지 않다. 오히려 자랑스럽다. 현역 15년 동안 김기태는 많은 것을 얻고, 많은 것을 남겼다. 은퇴 소감을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야구는 정직하다. 비리가 많은 요즘 세상 같지 않다. 그래서 야구선수였다는 게 자랑스럽다"라고.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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