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NIE]포용으로 마무리한 남북전쟁 … 링컨, 남군 처벌하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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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

“1863년 1월 1일부터 미합중국에 대하여 반란 상태에 있는 주 또는 어떤 주의 특정 지역에서 노예로 예속되어 있는 모든 이들은 영원히 자유의 몸이 될 것이다.” 미국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의 첫날, 미국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은 노예해방선언을 공표한다. 미 정부가 공식적으로 노예제도의 폐지를 선언한 순간이었다. 흑인 노예 매매는 한때 전 세계에서 가장 활발했던 산업이었다.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200여 년 전만 해도 당연한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노예 해방을 이끈 링컨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정치지도자다. 올해는 그가 암살로 숨을 거둔 지 150년째 되는 해다. 각종 사료와 교과서, 언론을 통해 링컨과 미국 남북전쟁에 대해 알아봤다.

1861년부터 65년까지 남북전쟁이라는 위기 속에서 미국 연방정부를 이끌었던 16대 대통령. 그는 1863년 노예해방선언, 1865년 수정 헌법 13조의 통과를 이끌어내며 미국 내에서 노예제를 종식시키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링컨은 1832년 일리노이주 생가먼 카운티에서 주 의회 의원 후보로 나서면서 정치에 첫발을 들인다. 하지만 첫 출마에선 낙선, 2년 뒤 다시 출마해 주의원에 당선된다. 1837년엔 독학으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변호사 일을 시작했다. 이 시기 링컨은 전국적으로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다. 링컨은 1858년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스티븐 더글러스와 노예제를 놓고 공개 논쟁을 벌이며 일약 전국적인 정치인으로 급부상한다. 링컨은 공개적으로 노예제 반대를 표명했다. 인상적인 연설과 토론, 확고한 태도는 대중을 사로잡았다. 비록 선거에서는 패했지만 링컨은 이를 계기로 미국 정치의 중앙무대로 진출한다. 1860년 공화당은 링컨을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고, 그해 11월 링컨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다.

 링컨은 미국의 위기를 앞두고 대통령에 취임한다. 1861년 3월 대통령에 취임하고 곧바로 4월 남북전쟁이 발발한다. 국가가 둘로 쪼개질 수 있는 위기 앞에서 링컨은 북부 23개주로 구성된 연방정부의 수장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전쟁 기간 동안 노예제 폐지를 주도했다.

 1865년 4월 14일 링컨은 연극을 관람하던 중 존 윌크스 부스가 쏜 총에 저격당해 56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글=정현진 기자 correctroad@joongang.co.kr, 자문=중동고 김경철 역사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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