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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조훈현의 기질, 조훈현의 운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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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제10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본선 32강전 하이라이트>
○ . 조훈현 9단(한국) ● . 미조카미 도모치카 8단(일본)

세계 32강의 면모를 살펴보면서 깜짝 놀라게 된다. 조훈현 9단은 1952년생으로 32강 중 단연 최고령자다. 둘째는 56년생인 조치훈 9단. 그 다음은 66년생인 유창혁 9단과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 9단. 다섯째가 바로 75년생인 이창호 9단이다.

'지지 않는 소년'이란 별명을 얻었던 이창호는 여전히 어린 소년의 이미지로 우리 뇌리 속에 남아 있다. 그러나 이창호는 이미 유성에 모인 세계 32강 중 다섯째 고령자(?)였다. 생각하면 바둑 고수들의 나이 분포는 끝없이 낮아져만 간다.

장면1= 미조카미 도모치카(溝上知親) 8단은 '한국류'를 익힌 때문인지 움직임이 상당히 거칠고 공격적이다. 61에 이은 63도 자살 수 치고는 꽤 자극적인 수. '참고도' 백1로 잡아주면 그때 흑2, 4를 선수하겠다는 일종의 사석전법이다. 백은 '참고도'처럼 두어도 못 둘 게 없다. 4의 한 방이 좀 따끔하기는 해도 형세가 좋은 만큼 이쪽이 안전하다. 그러나 승부란 기세의 싸움. 특히 조훈현이란 사람은 승부 호흡이 강렬해 이런 경우 거의 반발하는 쪽을 선택한다.

장면2= 조훈현 9단은 64로 그냥 기어나왔다. 왜 막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상대가 막기를 원하니까"라고 대답할 것이 뻔하다. 흑도 65로 돌파한 뒤 67로 강경히 차단하여 갑자기 먼지 자욱한 혼전이 시작됐다.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참고도'처럼 두어 이길 수 있다면 그 길로 가는 게 순리가 아닐까.

물론 그럴 것이다. 그러나 조훈현은 성격상 평생 이렇게 두어왔고 형세에 관계없이 체질적으로 반발하고야 만다. 이 점은 그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것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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