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안의 실수|김철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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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당신 매력있는데….』
매력이라니? 당치도 않은 말이다.
며칠전 내가 버스속에서 있었던 낭패를 호소했을때 유쾌한 듯, 웃으면서 던져진 남편의 대답이다.
섭씨3O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였는데 나는 그날 시내에서 볼일을 마치고 좌석버스에 올라탔다. 햇빛을 피해 내가 앉은 자리는 어느 중년남자옆이었고 옷깃이 닿을세라 조심조심 했던것 같다. 그러나 얼마서 왔을까? 『어머나. 세상에…』 나는 비명소리를 지르며 내 자리에서 용수철처럼 일어나 운전석을 향해 꼰두박질쳤다. 『여기 차비 있어요.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주세요.』 차가 멈추고 내가 뛰어내렸을 때 온몸은 땀으로 물속에 빠진 것 같았다.
다른 버스를 갈아 탄 나는 바로전에 탔던 버스속에서 내옆에 앉았던 중년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얹고 자던 내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어쩜 그렇게 곯아떨어질수가 있을까? 내가 언제 머리를 감았지, 침은 흘리지 않았는지….』 나는 비참한 기분과 함께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그 남자가 집에가서 그의 부인한테 뭐라고 할까? 아마 이렇게 말할것이다. 『원, 세상에 별주착없는 여자 다 봤군. 글쎄 버스를 탔는데 내곁에 앉은 여자가 얼마동안은 얌전히 있더니 어느결에 내어깨에 코를 박고 씩씩자는거야. 이건 흔들어 깨우기도 그렇고 참고 있자니 덥고 무겁구, 아주 오늘 학질 뗐는걸.』
그 부인이 물을 것이다.
『어때요, 예뻐요?』 『아니야, 예쁘기나 하믄, 이건 젊지도 예쁘지도 않아. 비쩍 마른 것이 뻔뻔스럽긴-.』
그렇다. 아무리 뻔뻔스럽다는 말을 한들 나는할말이 없다. 그리고 사과의 말도 없이 도망쳐 버렸음을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다. 또 그 추한 모양을 매력이라 말한 남편의 진의를 조금은 알것같아 짜증스런 더위속에서 빙그레 웃어본다.
서울강동구잠실5동고층아파트526동3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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