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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파공작원의 대부' 김동석씨 회고록 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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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동석씨(왼쪽)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김일성을 4분 차이로 놓쳤어요."

'북파공작원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김동석(82.예비역 육군 대령)씨는 23일 "1952년 8월 북한군 17사단장 이.취임식 참석차 원산에 들른 김일성을 잡기 위해 현장에 투입됐는데 예상보다 이른 새벽에 평양으로 떠나는 바람에 놓쳤다"고 말했다. 당시 김일성이 남긴 담배 꽁초에는 온기가 남아있었다고 한다.

김씨는 2년 뒤인 54년 2월에는 적진인 강원도 통천에 침투, 북한군 사단장 이영희를 설득해 귀순토록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이같은 자신의 북파공작 활동을 담은 'This man, 전쟁 영웅 김동석'이란 회고록을 최근 펴냈다.

'This man'은 50년 9월 맥아더 장군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그는 50년 7월 강화도를 경유, 인천으로 잠입한 뒤 서울 지역에 주둔 중이던 북한군의 위치와 현황 등 상세한 첩보를 유엔군사령부에 보냈다. 맥아더 장군은 김씨의 첩보를 면밀하게 검토한 끝에 "'This man'이 보낸 것이면 오케이"라며 인천상륙 작전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때부터 김씨는 남북한 공작원들 사이에서 'This man'으로 불려왔다. 김씨가 서울에서 국군에게 체포된 북한군 105전차사단 제1대대장 김영 소좌를 설득해 얻은 정보는 국군의 평양 입성에 결정적인 자료가 됐다. 미국은 김씨의 공로를 인정해 2002년 5월 경기도 의정부 미 2사단 내의 전쟁박물관에 '김동식 전쟁영웅실'을 만들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난 김씨는 광복군으로 활동하다 해방을 맡았다. 그는 회고록에서 "해방 직후 소련군에 체포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호송 중이던 박정희와 정일권을 헤이룽장성 부근에서 탈출시켜주었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육사 8기로 임관한 후 6.25 전쟁 중 육군첩보부대(HID) 창설 요원으로 '공작원 세계'에 뛰어들었다. 일제 때 하얼빈과 블라디보스토크 등지에서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했던 부친을 따라다니며 일본어.중국어.러시아어 등을 익혔던 것이 첩보부대 창설에 관여하게 된 이유가 됐다고 했다.

아직도 목소리가 카랑카랑한 김씨는 대령으로 예편한 뒤 강원도 삼척 군수와 강릉 시장, 목포 시장, 함경북도지사, 대한유도회 부회장 등을 지냈다. 중견가수 진미령(본명 김미령)씨가 딸이다. 김씨는 26일 오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북파공작원 출신 옛 동지들과 출판기념회를 가질 예정이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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