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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포럼

왜 눈물이 나는 걸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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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분장실에서 본 그의 걸음걸이는 매우 불안했다. 몇 발자국 떼다 쉬고 다시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잠시 후 그는 예술의전당 무대에 사뿐사뿐한 걸음으로 나타났다. 장구와 거문고.대금.피리.아쟁 등의 반주에 맞춰 우리가 본 최고의 춤의 경지에 들어갔다. 관객들이 흥에 겨워 손뼉이나 무릎을 쳤다. 몸은 죽어 가지만 무대에서는 날아간다는 그의 말이 정말이었다.

그와 함께 '전무후무'(全舞珝舞) 무대에 섰던 이 시대의 원로 춤꾼 다섯 명의 인생과 예술도 마찬가지였다. 승무의 이매방(79) 선생이 염불 소리에 맞춰 완만한 몸짓을 구사하다가 한삼 자락을 휘저으며 일어섰을 때 모두 안도의 숨을 쉬며 우레와 같은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그가 앉은 듯 선 듯 불안한 자세를 취할 때 '저러다 쓰러지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스러운 표정들이 관객 사이에 스쳐 지나갔다. 무릎 통증에 시달리고 있는 그가 몸을 바로잡아 똑바로 일어설 때까지 모두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그러나 승무의 춤사위는 감격으로 다가왔다.

양산학춤의 김덕명(82) 선생이나 동래입춤의 문장원(89) 선생, 교방굿거리춤의 김수악(80) 선생도 이 무대에서 열정을 불태워 버렸다. 도대체 전혀 감동을 보일 자세가 아닌 많은 젊은 관객이 무대에 열중하는 것도 신기로웠다. 무대를 장악하고 있는 이들 중요무형문화재의 손짓 발짓 하나하나를 따라가는 관객들의 눈짓과 머릿짓도 정말 멋진 율동과 조화를 이뤄냈다. 민살풀이 춤을 춘 장금도(78) 여사는 호흡이 깨질세라 수건도 들지 않았다. 그는 이 무대에서 평생 잊지 못할 꽃다발을 받았다. 그런 춤에 빠져 있는 어미가 부끄럽다며 50여 년 동안 외면해 왔던 60대 아들이 이날 고개를 숙이며 잘못을 빌었다. 어쩌면 다시 한 무대에서 보기 어려운 이들 6명의 원로 춤꾼은 10월의 가을밤을 잊지 않도록 우리에게 깊은 추억을 안겨 주었다.

공연이 끝난 뒤 불이 켜지자 거의 모든 사람이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드러났다. 젊은이들도, 중년의 사나이들도 손수건을 꺼냈다. 도대체 왜 눈물이 나지? 왜 내가 울지? 틀림없이 탈진 상태에 이르렀을 노년의 춤꾼들은 한참이나 무대 뒤에서 기력이 회복되기를 기다렸다가 떠났을 것이다. 몸은 갔어도 예술에 대한 프로의 의지와 자존심이 그들을 지탱해 준 것이다. 세속적 삶이 인생을 고달프게 해도 그들은 명무(名舞)의 반열에서 명예와 존경심을 지켜 왔다. 눈물이 말라 있는 우리들은 그들을 위해 흘릴 다른 눈물이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최철주 NEXT 편집위원장